1985년, 40년 전이다. 학생 시절 부모님을 따라 부천에 정착한 때. 당시를 떠올리면 지금의 성곡동 주민센터 자리인 105번 버스(부천 원종동을 시발점으로 서울 영등포시장까지 오가던) 종점에서 서울로의 통학을 위해 출발 버스를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야 했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포장되지 않아 비가 오면 질척거리던 골목길과 초여름이면 버스 종점 옆 미나리꽝에서 우렁차게 울어대던 두꺼비 소리 등.
누군가에겐 소소한 일상의 추억이 되었을, 또 다른 누군가에겐 치열하게 꿈을 일구어갔을 그 시대의 부천 이야기를 담은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부천의 근현대 산업 변천 과정과 현장에서 산업을 성장시키는데 함께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특별전시회 ‘부천의 산업을 일군 사람들, 꿈으로 시대를 열다 展’을 만나러 부천시립박물관을 찾았다.
전시를 기획한 전현정 학예사의 안내로 전시관 입구에 들어섰다. 기대했던 만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부천의 산업 발전 연보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부천이 농업사회에서 제약(경공업)·중공업·첨단 디지털산업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알리는 산업별 4명의 페르소나(persona)가 당시의 산업 현장에서 어떻게 꿈을 현실로 성장시켜 나갔는지 설명해 주고 있었다. 지금의 부천은 만화, 영화, 음악 등의 문화도시로 잘 알려져서 공업 등의 산업도시로서의 모습을 떠올린다는 것이 약간은 생소하기조차 했다.
▲ 유한양행 창립자 유일한박사 페르소나
▲ 한미재단 소사 4-H 훈련농장 장기교육생 김철호 씨 페르소나
▲ 삼양중기에서 근무했던 신길룡 씨 페르소나
▲ 대한민국 바도체 산업의 시작 '한국반도체'에서 근무했던 김영숙 씨 페르소나
전시관에는 유한양행, 한미재단(4H), 삼양중기, 한국 반도체(삼성반도체) 등 대표적인 4개의 기업(기관)을 중심으로 수도권 정비사업이 시작된 90년대 이전인 70~80년대의 현장의 모습과 각 산업을 알리는 물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특히 계단식으로 개간한 농지에 과수원을 일구고 가축을 기르는 훈련 농장이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더욱이 농작물을 발표시켜 저장한 사료를 일컫는 사일리지(Silage)를 저장하는 시설인 사일로(Silo)는 현재도 소사체육공원 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재복구의 역사와 근현대기 농축산업을 기억하는 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21년 경기도 시도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를 계기로 시에서는 우리 지역의 역사와 현장의 흔적을 보존하자는 의미에서 조례 제정을 통해 사일로 주변을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고자 계획 중이라는 전현정 학예사의 설명이다.

▲ 현재 소사체육공원 내에 남아있는 사일로(기획전시관 도록에 수록)
중공업 산업 부흥기의 중심에 있었던 삼양중기는 얼마 전 B39에서 금형이나 목형 제작을 위한 도면이나 주물 작업하던 도구 등을 중심으로 아카이브 전시를 진행했는데, 당시에 사용하던 금형이나 목형, 기계장치 등은 부피가 커서 현재 작동 군부대 부지에 보관 중이며 이후에 역사관 등이 건립된다면 그곳에서 보관하여 상설 전시를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삼양중기에서 금형이나 목형 제작을 위해 사용했던 당시의 도면
▲ 삼양중기의 금형과 목형(당시 사용되었던 대부분의 금형과 목형은 현재 작동 군부대 부지에 보관되어 있다)
▲ 1970년대 ~ 1980년대 사용했던 작업노트와 계사기, 식권 등이 보인다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근간을 이룬 한국 반도체는 삼성반도체로 변경되면서 본격적인 반도체 개발과 연구가 시작되었는데 1983년 부천공장에서 미국과 일본에 이은 세계 세 번째이자 국내 최초 64K D램 개발에 성공하여 집적회로의 실용화를 이루어내고 한국이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기획전시회 도록 참조).
4명의 페르소나를 통해 둘러본 부천의 근현대 산업사 과정은 현장의 삶을 통해 각자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과 닮아있다. 관람객이 있었다면 관람 소감이라도 한마디 듣고 싶었으나 방문했던 시각이 주말의 늦은 오후라서 그랬는지 전시관이 한산했다.
각양각색 꽃들의 개화와 함께 다채로운 행사와 전시, 볼거리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봄의 시작이다. 화려하지도, 즐길 거리도 없지만, 우리 지역 산업 발달 과정과 그 현장에서 일을 일구어 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한 번쯤은 자녀들에게 들려주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관람을 마무리했다. ‘부천의 산업을 일군 사람들, 꿈으로 시대를 열다 展’은 오는 4월 20일까지 부천시립박물관 통합관 기획전시실에 전시되며 관람 시간은 9:30 ~ 18:00(입장 마감 17:00),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는 무료다.
- 관람 문의 : 032-684-9057~8
- 부천시박물관 홈페이지 : www.bcmuseum.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