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한가운데, 부천시청역에서 신중동역까지 이어지는 대로변을 걷는 일은 그리 녹록지 않다. 사정없이 내리쬐는 뙤약볕과 달아오른 아스팔트 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주 잠깐, 아파트 단지 안쪽으로 발걸음을 살짝 들이는 순간 공기의 온도부터 서늘하게 내려앉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곳에는 콘크리트 빌딩 숲 사이를 마치 초록빛 강물처럼 도도하게 흐르는 길이 있다. 은하마을에서 중흥마을까지 이어지는, 이름마저 다정한 ‘사이시옷길’이다.

▲ 중동 은하마을과 중흥마을까지 이어진 사이시옷길, 짙은 나무 그늘은 한여름 열기를 막아주는 초록빛 오아시스
지하철 한 정거장 남짓한 이 길은 얼핏 대단치 않은 일상의 통로 같지만, 그 위에 드리워진 우거진 나무 그늘만큼은 깊은 계곡 못지않은 푸른 위안을 건넨다. 머리 위를 빽빽하게 메운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려 거대한 초록색 지붕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여름날의 뜨겁고 날카로운 햇볕도 이 웅장한 나무그늘 아래서는 순한 연둣빛 빛줄기로 흩어진다. 나뭇잎들이 햇볕을 차단하고 스스로 머금은 수분을 뿜어내며 공기를 식혀주는 덕분에, 나무그늘 아래 온도는 땡볕이 내리쬐는 도로변보다 무려 수 도 이상 낮다. 그늘로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에어컨을 약하게 켠 듯, 시원하고 청량한 바람이 뺨을 스친다. 어쩌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이 길을 걸으면 비가 멈춘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그늘이 짙고 아늑하다.

▲ 이 길 왼쪽에 학교들과 놀이터, 운동 기구가 있고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줄지어 있다.
이 길은 단순히 바라보는 풍경에 그치지 않고, 마을 주민들의 삶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길목을 따라 어린이집과 유치원, 부흥초등학교, 중흥초등학교, 중흥중학교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학교 근처에는 영락없이 놀이터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등하교 시간이 되면 사이시옷길은 아이들과 학생들로 더없이 분주해진다. 하굣길에 할머니 손을 꼭 잡은 아이들,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놀이터에서 깔깔대며 노는 소리가 싱그러운 공기 속으로 퍼진다. 찻길의 위험과 소음으로부터 차단된 아늑한 울타리 안에서, 아이들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자라난다. 매일 이 길을 걷는 한 학생은 "나중에 어른이 되면 이 길을 가장 먼저 떠올리고 기억할 것 같아요. 정말 좋은 추억으로 남을 길이에요"라며 맑게 웃어 보였다.

▲ 부흥초, 중흥초, 중흥중, 어린이집, 유치원 등이 이 길 위에... 자연이 주는 다정한 토닥임 같은 학생들의 안심 등하교길
사람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이 길 위에서 숨을 고른다. 바쁜 출퇴근길의 직장인들도,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선 이웃들도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를 걷거나 곳곳에 놓인 벤치에 앉아 땀을 식힌다. 굳이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시원한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지 않고 이 길을 택해 걷는 이유에 대해 한 주민은 이렇게 말한다. "멀리까지 나서지 않아도 내가 사는 집 바로 옆에 이런 좋은 길이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위안이에요. 답답한 집안을 벗어나 안심하고 숨 쉴 수 있는 소중한 대피소이자 쉼터죠."
사계절 내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 길은 그늘이 짙어 흐드러진 꽃밭은 없지만, 짙은 녹음 속에서도 계절꽃들이 묵묵히 피고 진다. 지금 이 계절에는 무궁화와 참나리, 수국이 피어나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다정하게 붙잡는다.

▲ 지친 도시인을 위로하는 초록 쉼표
▲ 중흥초 앞 바람개비, 부천시청역에서 신중동역까지는 사이시옷길로 걸어 보아요~
법정 스님은 그의 산문집 《오두막 편지》에서 '숲길을 걸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인간이 된다. 머리 위에서 사르르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는 영혼의 묵은 때를 씻어내고 발밑에서 밟히는 부드러운 흙은 고단한 삶의 무게를 묵묵히 받아 안는다. 나무가 만들어 준 그늘 아래 서서 가만히 숨을 고르면 내 안에 거친 호흡도 어느새 숲의 흐름을 닮아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고 썼다.
문학가들이 노래한 숲길의 아름다움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매일 부흥초, 중흥초, 중흥중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번지고 주민들의 고단함을 다정하게 품어주는 부천 중동의 사이시옷길. 묵묵히 제 팔을 벌려 시원한 품을 내어주는 나무들이 가득한 이 초록빛 오아시스는 그 자체로 도심 속에 펼쳐진 하나의 아름다운 문학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