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인연의 시작
“허리 골절로 몇 달간 입원했다가 퇴원하신 분이 있는데,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요. 집이 너무 열악해요.” 의료급여관리사의 권유로, 강꽃잎(가명)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봄꽃이 흩날리던 날이었습니다. 강꽃잎님은 임대아파트에 홀로 살고 계셨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저를 한사코 막으셨지만, 현관문을 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집안 가득 밴 냄새가 그 이유를 말해주고 있었죠.
두 개의 방과 거실, 주방, 베란다까지…짐과 쓰레기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강꽃잎님이 쉴 수 있는 곳은 화장실과 소파뿐이었습니다.
버려진 시간 속의 삶
벽에 걸린 사진을 보고 말을 걸었습니다.“아드님이신가 봐요. 잘생기셨네요.”, “그렇지, 잘생겼지? 날 닮아 똑똑해. 대학교 수학과를 나왔고, 애들을 가르쳐.”
강꽃잎님에겐 연년생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아들은 과외를, 작은아들은 음식점 관련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은 자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아픈 몸에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 이야기에, 강꽃잎님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작은아들은 미혼부가 되어 아이를 맡기며 도움을 청했고, 강꽃잎님은 아들 집에 가서 손자를 돌보다 집 안에서 넘어져 골절을 입으셨습니다. 종합병원에서 수술 후 3개월간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얼마 전 퇴원하신 참이었습니다.
“남편이 내연녀와 떠난 뒤로, 그냥 다 내버려뒀어요.”짐 속에서 바퀴벌레가 스쳤습니다. 그 짐들은 한두 해가 아니라, 20년 넘게 쌓여 있었습니다.
기다림의 미학
처음 만난 날, 강꽃잎님은 두 시간을 쉬지 않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다음 날 또 오라는 말씀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집을 치우자는 말은 쉽게 꺼낼 수 없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주변과 관리사무소에서 권유를 받았지만, 번번이 거절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집 앞 공원을 함께 산책하고, 식사 시간을 맞춰 찾아가며 조금씩 정을 쌓았습니다. “딸이 없어서 그런지, 선생님이 좋아.” 그 말에 저는 조심스레 말을 꺼냈습니다. “어르신, 집안을 좀 치우면 어떨까요? 소파에서만 주무시는 게 마음 아파요. 안방 침대를 쓰시면 훨씬 좋을 거 같아요. 생각해 보실 거죠?”
며칠 뒤, 강꽃잎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 정리해 볼 게 도와줘. 치워볼게.”
비움의 시작
집 정리를 결심한 강꽃잎님을 위해, 여러 기관에 의뢰 끝에 가장 저렴하고 폐가구 처리까지 해줄 수 있는 지역자활센터를 섭외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모를 분쟁이나 추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아드님께 반드시 정리 당일 동석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약속한 날 아침 9시, 자활센터 담당자 5명이 집으로 들어섰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코끝을 찌르는 냄새, 그리고 발 디딜 틈 없는 짐 더미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강꽃잎님은 처음엔 결심한 듯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쌓여 있던 물건 하나하나에 마음을 주저하셨습니다. 짐을 다 치우지 못한 상황이어서 마음이 조급하던 차에 안방 문 앞에 서서 두 팔로 문틀을 가로막으며 “여긴 안 돼! 여긴 내 옷이 있는 곳이야. 비싼 거라 버릴 수 없어.”라며 목소리를 높이셨습니다. 결국 안방만큼은 다음을 기약하고, 나머지 공간을 먼저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부엌과 거실, 베란다를 차례로 비워나갔습니다.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안에는 썩어 문드러진 음식물이 가득했고, 이미 고장 나 장기간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용물을 치운 뒤, 고장 난 가전 두 대 모두 폐기했습니다. 오후 5시가 되어 정리가 끝났을 때, 집 안은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되찾았습니다. 강꽃잎님은 비워진 거실 한가운데 서서,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 공간을 바라보셨습니다.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강꽃잎님의 아들은 냄새와 쓰레기 때문에 어머니의 집을 찾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무관심이 아니라 수차례 말해도 정리되지 않던 상황에 대한 ‘포기’에 가까웠습니다. 20년 넘게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정리 당일, 아드님은 다소 어색해했지만 온종일 함께 치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씁니다. 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조심스레 “이제 집은 깨끗해졌지만, 고장 난 냉장고와 가스레인지 때문에 요양보호사도 식사를 챙겨드릴 수 없으니. 두 아드님이 상의해서 새로 구매해 주실 수 있을까요?”하고 여쭈었습니다.
혹시나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하냐?’라는 말을 들을까 걱정했지만, 아드님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20년 넘게 어쩌지 못했던 걸 구청에서 도와주셨는데,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며칠 뒤, 강꽃잎님은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사줬어. 엄마 다시 잘살아 보라고.”그 표정엔 오랜 소원함이 풀린 듯한 기쁨과 다시금 살아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변화의 시작
집을 정리한 뒤에도 강꽃잎님에게서 여전히 기억력 저하와 주의력 감소가 보였습니다. 대화하다 보면 조금 전 이야기조차 잊어버리거나, 집 비밀번호를 자주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습니다. “어르신, 기억력 검사를 한번 받아보는 게 어떨까요? 보건소에서 무료로 검사도 해주고, 필요한 경우 기저귀도 지원해 준대요. 밤에 급할 때 도움이 될 거예요. ”강꽃잎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미소 지으며 답하셨습니다. “선생님이 가자고 하면 가야지.”
그렇게 두 차례에 걸쳐 보건소를 방문했고, 초기 치매 의심 결과가 나왔습니다. 병원에서 뇌 MRI 검사를 진행한 끝에 치매 확진을 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갑상선기능저하증과 고지혈증 수치가 높게 나와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했고, 5등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제 강꽃잎님은 주 5일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으며 일상생활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전에는 절대 손대지 않던 안방도 요양보호사와 함께 조금씩 치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치웠어. 선생님, 잘했지?” 칭찬받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 같은 표정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생활의 안정
하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는 남아있었습니다. 기초연금과 주거급여만으로는 생활이 빠듯했고, 1년 넘게 체납된 관리비와 임대료는 강꽃잎님의 큰 짐이었습니다.
과거 건강했을 때는 스스로 반찬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유지했고, 그래서 생계급여는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소득이 전혀 없고 치매 진단까지 받은 상태였기에, 생계급여 신청을 도왔습니다. 다행히 지원이 책정되어 매달 안정적인 생활비를 받게 되었고, 경제적 부담이 크게 줄었습니다.
아들들도 마음을 모아 체납된 관리비와 임대료를 납부했고, 고장 난 세탁기까지 새로 구매해 주었습니다. 강꽃잎님은 “이제 아들들한테 손 벌리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하다”라며 웃으셨습니다.
나 요즘 행복해요
어느 날, 강꽃잎님이 유난히 밝은 표정으로 저를 맞이하셨습니다. “선생님, 나 요즘 너무 행복해요. 얼마 만에 느껴보는 행복인지 몰라요. 교회 사람들도 이제 집으로 초대했어요.”
예전에는 아들이 집 앞에 잠시 들러 얼굴만 보이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집 안에 들어와 차를 마시며 한참을 대화하고, 때로는 저녁까지 함께 먹고 갑니다. 강꽃잎님은 그 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아들이 오기로 한 날에는 아침부터 집을 한 번 더 살펴보며 단정히 준비한다고 하셨습니다.
가끔은 여행도 함께 가며, 예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추억’을 다시 만들고 있습니다. 사진 속에는 활짝 웃는 강꽃잎님과 아들이 나란히 서 있고, 그 모습은 오랜 시간의 거리와 서먹함을 조금씩 지워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괜찮아
20년 전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움직이듯, 강꽃잎님의 삶도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쓰레기더미 속에서 홀로 버티던 날들은 지나가고, 이제는 집 안에 햇살과 웃음이 깃든 새로운 일상이 자리 잡았습니다.
아들들의 발걸음이 잦아지고, 이웃과 교회 사람들과도 자유롭게 오가며 관계를 이어갑니다. 강꽃잎님은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도 해보고 싶어요”라며 가을에는 아들과 단풍 구경을 가겠다고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과거의 상처 속에 머물던 삶은 이제 끝났습니다. 앞으로의 노년은 사람들의 온기와 웃음으로 채워질 것이며, 그 길 위에서 강꽃잎님은 스스로에게 말할 것입니다.“이제는 정말 괜찮아.”
[ 소사구 사회복지과 장진 통합사례관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