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잘 안 먹어, 불 도 키지 말어.
사람의 발 길이 닿은지 한참 된 듯한 어둠과 묵은 공기.
옥빛 할머니를 처음 뵙게 된 날 가정방문 갔을 때 마치 동굴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낮인데도 집안에 볕이 들지 않도록 창문에는 가림막이 쳐져 있고, 조명도 TV도 켜지 않은 채 홀로 계셨던 할머니.
낯선 이의 방문에도 문은 열어주셨지만 왜 왔느냐는 눈빛과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어렵게 대화의 물꼬를 터 알게 된 할머니는 남편의 가정폭력을 피해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와 홀로 자녀를 키워낸 엄마였습니다.
자녀는 일이 바빠 오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지만, 자녀가 할머니 댁에 오지 않은 지 한참 되었다는 것은 집안 상태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기억하지 못하시는 부분들이 있었고, 복지관에서 지원해 드린 반찬을 고장난 냉장고에 보관하시는 모습에 치매가 의심되었습니다.
남은 반찬의 양을 보아 식사도 거의 하지 않으신 듯 했습니다.
할머님의 체격이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마르셔서 식사에 대해 물으니, 원래 식욕이 없어 잘 먹지 않는다고 하셨고 어둠에 익숙하신지 그나마 켜지는 부엌의 불도 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집안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할머님은 대체 이 상태로 얼마나 지내신 걸까요.
누구야..? 지금 어디가는거야?
부천시청과 소사구청, 심곡본1동 행정복지센터와 함께한 통합사례회의를 통해 할머님을 사례관리 대상자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치매검사를 진행하고, 장기요양등급이 나오기 전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님 댁에서 자녀의 전화번호를 발견했고, 할머님의 동의하게 곁에서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할머님의 상태에 대해 알리니 조금 놀라는 듯했지만, 복지관에서 알아서 해 주면 안 되냐며 지원해 줄 것을 희망했습니다.
진료 동행과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자녀가 하도록 독려해 보려 했으나 어려움이 있었고, 더 이상 할머님을 방치하면 안된다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져 사례관리 담당자가 진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병원 진료를 동행하느라 함께 10분 남짓 걸을 때에도, 할머님은 담당자에게 누구냐며 어딜 가는 것이냐고 수 회 묻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할머니 입장에서 담당자는 항상 낯선 사람인 것을 이해하고, 검사를 위해 소사치매안심센터에 동행할 때에는‘사회복지사와 치매검사 하러 가는 중’이라고 적힌 종이를 드렸습니다.
백미러로 살펴보니 종이를 몇 번이고 펼쳐 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제가 누구인지 어딜 가는지 묻지 않으셨습니다.
센터에 방문하니 할머님을 이미 아시고 반겨주셨는데, 알고 보니 본인의 치매가 걱정되었던 할머님이 센터에 문의한 적이 있었고 문의한 것을 잊고 여러 번 같은 문의를 반복하셨었다고 합니다.
새로 태어난 옥빛 할머니의 집
그렇게 할머님과 동행하는 날들이 많아졌음에도 여전히 담당자가 어디 소속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셨지만‘나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라고 기억하셨고, 낯설어 하던 눈빛에서 이제는 익숙해하는 표정으로 맞이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통합돌봄서비스 신청이 접수되어 할머님의 생활과 환경에 큰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낯선 이에 대해 경계하고 불편하는 할머니를 위해 각 분야의 담당자들이 새로 방문할 때마다 사례관리 담당자가 동행하여 서비스 제공이 원활하도록 지원했습니다.
우선 가장 걱정이었던 부드러운 먹거리와 병원 진료, 실내 등과 고장 난 수전 수리.
할머니의 협조가 어려워 최대 난관이었던 청소 지원 또한 소사지역자활센터 분들의 노력으로 할머니의 집이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건 하나라도 놓칠세라 불편한 몸으로 청소 현장을 오가던 할머님도, 비록 다음날 청소 지원받은 것을 잊으셨지만 집이 깨끗해진 것에 만족해하셨습니다.
너무 애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반가운 변화는, 자녀분이 할머니 댁에 왕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자녀가 할머니의 진료나 돌봄에 참여할 수 있게끔 독려하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습니다.
할머니와 자녀가 함께한 세월 속 이야기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왕래하지 않은 지 한 참은 돼 보이는 상태였습니다.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근황과 상태에 대해 조금씩 꾸준히 자녀에게 알렸고 언젠가부터는 먼저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옥빛 할머니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아 요양보호사의 돌봄을 받고 계시고, 자녀분이 왕래하며 생활에 필요한 부분을 챙겨드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할머님을 위한 영양제를 주고 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답니다.
가정방문 시 만난 자녀는 담당자에게 너무 애쓰셨다며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첫 통화 때와는 다른 자녀의 모습에 뿌듯하면서도 안심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렵게 이어진 할머니와 자녀의 끈이 다시 느슨하거나 끊기지 않길 바라며, 이렇게 또 다른 대상자분들을 만나러 갈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옥빛 할머니! 이제는 밝은 집에서 더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
대산종합사회복지관 남기연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