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불꽃을 함께
작성자 : 지역돌봄팀 등록일 : 2026-01-28 조회 :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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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만남은 한편의 영화...


2024년 8월 무더운 여름날. 김철수님의 첫 만남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습니다. 


잠기지 않은 문틈으로 들리는 “열려...있어요...들어...와...요.”말소리에 섞여들리는 거친 숨소리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고 나중에 다시 와야하나 고민을 하게 했습니다. “들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들어가니 어수선한 짐들이 양쪽으로 쌓여 있고 수북한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은 바닥은 발자국이 찍힐 정도였습니다. “방으로...들어와...요.”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정면으로 보이는 안방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음산했고 마른침을 삼키게 만들었습니다. 힘겹게 발을 떼어 들어간 방에는 침대에 엉덩이를 걸치고 팔을 다리에 지지대 삼아 대고 구부정하게나마 모로 앉아있는 김철수님이 계셨습니다. 


지금도 기억하는 그분의 옆모습은 조금 괴기스러워 보였습니다. 너무나 더운 무더위에 사각 팬츠만을 입고 있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앙상한 팔다리에 배만 불룩 나와 지탱하기 힘들어 보였고 역시나 가늘지만 긴 목 위에는 듬성듬성한 하얀 머리털과 대비되는 시커먼 낯빛의 얼굴이 고개를 채 돌리지도 못한 채 눈만 돌려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역광은 그분의 실루엣을 더욱 부각시켰고 거실과 비슷한 어수선한 방의 분위기를 밝게 비추기에는 많이 부족하여 더욱 음산하게 보이게 했습니다. 그리고 색색거리는 숨소리, 탈탈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까지...!


등을 달리는 소름을 무시하고 인사를 하는 저의 이마로 더위 때문인지, 무서움 때문인지 땀이 연신 흘렀습니다. 그 순간을 상쇄시킨 것은 너무 힘들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힘들어서 일어나지 못해 미안하다는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그때야 그분의 얼굴과 눈빛이 자세히 보였고 무서움은 저만치 사라지며 제가 해야 할 일이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얘기하기 불편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저의 인사로 시작된 초기상담은 저의 걱정이 기우일 정도로 잘 말씀해주신 김철수님으로 인해 잘 진행되었습니다. 김철수님은 3년 전 이혼을 하셨고 세 명의 자녀들은 독립하여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았던 집에 혼자 살고 계셨습니다. 어수선하게 쌓여 있던 짐들은 독립한 자녀들의 짐으로 나가더니 오지도 않고 짐만 쌓아놨다고 자녀들을 욕하면서도 혹시나 아이들에게 필요할지도 몰라 치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래 놓고 오지를 않아요. 치우라고 말해도 알았다고만 하고... 그래도 필요할 수도 있으니까 버릴 수도 없고...”

더욱 그분과 가까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공포영화의 한 장면에서 일상생활로의 전환은 영화의 도입부로 아주 좋은 시작이었습니다.


인생은 파란만장! 


김철수님은 부잣집 6남 2녀의 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셨습니다. 공부도 잘했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해 손에서 책을 놓아본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불행은 중2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시작되었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 진학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고등학교만 장학금을 받으며 겨우 졸업한 김철수님은 군에 바로 입대하였고 제대 후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8년 동안이나 해외에서 일합니다. 우리나라 산업발달의 주역으로 당당히 역할을 다하고 한국에 돌아와 열심히 일한 결실을 형님의 사업에 투자합니다. 하지만 형님의 사업이 망하며 모았던 돈을 다 날리고 맨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일해 본인의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며 사업을 확장하여 많은 거래처가 생겼고 그 거래처 중 한 곳에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결혼하여 1남 2녀의 자녀를 낳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은 또 김철수님을 방해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물밀듯이 들이닥치는 중국의 저가의 물량 공세를 개인의 힘으로는 이겨낼 수 없었습니다. 친구에게 사기도 당합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절망스러웠지만 가족을 위해 다시 힘을 냈고 목수일을 배워 전국을 다니며 돈을 버시게 됩니다. 자녀들이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 있을 만큼 지원해줄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불행이 김철수님이 아닌 부인에게 다가옵니다. 보험설계사를 하던 부인이 사기를 당해 김철수님이 번 돈까지 다 날리고 집도 날리게 되었고 모든 일들이 지나갔을 때, 현재 사는 집에 전세임대로 겨우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족의 곁에 머물기로 하고 김철수님은 오토바이로 배달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언제나처럼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셨다고 합니다. 차 사고로 다리에 장애를 입기까지는요. 오른쪽 다리 근육이 다 파일 정도의 큰 사고는 김철수님에게 장애를 남기고 궂은 날씨에는 통증을 주었습니다. 물론 김철수님은 그냥 주저앉지 않고 통증을 꿋꿋이 넘기며 일을 하지만 예전만큼 일할 수 없었고 그 사이 부인과의 사이가 나빠지며 이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지방에서 일하며 자녀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았던 김철수님과 자녀들의 사이도 점점 소원해졌고 자녀들도 한두 명씩 독립하며 김철수님 혼자 남았습니다. 


그리고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 버팁니다.


차 사고의 후유증은 궂은날만 아프다가 시시때때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밤마다 통증이 심해 잠을 못 자는 지경이 되었고 낮에도 아프게 되었습니다. 계속된 아픔으로 1년 6개월 전부터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진통제로 버텼지만 어느 순간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숨이 차고 체중은 8kg 감소하고 소화불량에 배가 비정상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모아놓은 돈을 전부 사용하여 1년이 넘은 의료보험 미납과 LH의 월 임대료 미납으로 퇴거 조치 안내문이 와 있었으며, 3월에 도시가스는 끊긴 채였습니다. 핸드폰 요금도 미납되어 곧 중지될 처지로 그나마 신정동에 사는 여동생 가끔 보내주는 5만원 정도의 돈으로 전기세 수도세를 내고 뉴케어를 사서 먹었으며 목수를 함께 하던 친구가 사준 쌀로 미음을 쒀 드시며 하루하루 버티고 계셨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버티셨나요? 음식 살 돈도 없으신데요.”

“속이 안 좋아서 밥도 잘 못 먹어요. 뉴케어랑 미음만 먹을 수 있었어요. 하루에 한번 정도... 동생도 친구도 고맙죠. ”


소화불량에 음식 섭취가 힘들어 뉴케어와 미음만 먹을 수 있었던 상황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었지만 그것마저도 고마운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돈도 없지만 몸이 너무 아파 병원 예약을 해놓고도 가지 못하고 계신 상황에서 기초생활수급신청도 알아보셨고 교회를 통해 장기요양등급신청도 알아보셨다고 하셨습니다. 몸이 아파서 겨우겨우 하루하루를 버티면서도 조금이라도 좋아지면 해볼 일들을 알아보고 준비한 결과는 상황을 알게 된 어떤 분이(김철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복지관에 사례 의뢰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영화의 반전에 시발점이 되는 사례관리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씩 하나씩! 


가장 급한 것은 긴급생계비와 기초생활수급 신청! 

그리고 의료비 지원 연계와 병원 진료. 

다음은 미납된 의료보험과 월임대료 해결을 위한 방안 모색.

또 핸드폰 미납금액 해결. 

마지막으로 돌봄 지원 알아보기.

긴급생계비 신청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선정도 바로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 신청에서 김철수님께 가장 필요한 의료급여 신청은 쉽지 않았습니다. 자녀들의 서류가 필요한데 집에 자주 오지 않는 만큼 사이는 멀어져 연락도 잘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자주 통화한다는 막내딸도 한두달에 한 번 정도 연락이 오고 있었습니다. 

막내딸에게 제가 연락해 도움을 요청하기로 하면서 어떻게 아버지가 저런 지경인데 모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혹시 도움을 주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막내딸과 연락하며 왜 그렇게 관계가 소원해졌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빠하고는 얘기가 안 돼요. 우리 얘기는 듣지도 않고 그냥 하라고만 하고...”

가족이지만 지방에서 일했던 아버지는 다정하기보다는 무뚝뚝했고 잠깐 집에 올 때는 반가움이 자라기도 전에 그동안 하지 못한 걱정의 말들, 해야 할 일들을 말하며 자녀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그나마 항상 함께했던 엄마가 떠나자 더욱 서먹해졌고 독립하며 마음은 더 멀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연락은 점점 뜸해졌고 가끔 연락하는 막내딸에게도 아버지는 자신의 상황을 알리기 보다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자녀들의 미래에 대한 불편한 말들을 하기 바빴다고 합니다. 김철수님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언제나 열심히 사셨던 분이고 아픈 몸에도 해야 할 일을 계획하던 분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방식과 태도는 자녀들에게도 요구되었던 것입니다. 

아버지의 상황을 알게 된 자녀들은 필요한 서류들을 빨리 준비해주었고 의료급여까지 신정 할 수 있었습니다. 심사 기간 동안 오정구청, 부천우리병원과 협약을 체결해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는 ‘위드오정 러브앤쉐어 저소득층 의료지원 사업’에 연계하여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드렸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신정동에 사는 여동생이 보험설계사 일을 하며 김철수님의 실비를 들어놓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만약 지원금만으로 치료할 수 없는 병이라면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신한금융희망재단에서 지원하는 ‘사회복지사 연계 사례관리 지원사업’에 신청을 넣었습니다. 미납된 의료보험료와 월세, 단 하나의 연락할 수단인 핸드폰 요금 등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돌봄 지원에는 어떤 방법이 있는지 알아보며 하루하루 흘렀습니다. 


아픔을 이기는 희망.


김철수님은 여전히 아프고 힘드셨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무서웠던 모습은 사라지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렇게 아프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살길이 생기네요.” 


혼자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했던 생각은 사라지고 손을 내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등 돌렸다고 생각하던 자녀들은 정확한 상황을 알자 빠르게 움직여주었고 여동생도 적극적으로 나서 주었습니다. 아픔은 여전했지만 희망이 생겼고 무엇보다 외롭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사라지게 하는 나쁜 소식도 들렸습니다. 병원 진료 결과가 90%의 확률로 암이라고 나왔습니다. 더 큰 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과를 들은 김철수님은 실망하신 듯하였고 한순간 말씀을 못하셨습니다. 


“병원 예약해서 진료받죠. 어떤 병인지,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하루라도 빨리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요!” 


혹시라고 포기하실까 바로 다음 계획을 말씀드렸습니다. 미납된 의료보험이 문제라면 어떻게든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하며 독려드렸습니다. 아픈 상황에서도 몸이 좀 좋아지면 뭘 할지 계획을 세우시던 김철수님은 실망한 모습을 버리고 바로 병원 진료를 계획하셨습니다. 다행히 실비보험이 있으셨고 여동생분이 계속 병원 동행 등 도와주시기로 하며 바로 여의도 성모병원에 예약을 했습니다. 


좋은 소식도 있었습니다. 병원 진료 후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지원금 선정이 결정되었고 미납되었던 의료보험료와 월 임대료, 곧 정지된다는 핸드폰 요금도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에도 선정되었습니다. 음식도 구입할 수 없었던 곤궁한 생활에서 벗어나 치료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림프절암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아프신지 오래되어 3기가 넘어가고 있었지만 김철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아프고 결과는 좋지 않지만 예전보다 나아진 상황,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은 김철수님께 희망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포기할 수 없는 싸움.


항암치료 계획이 수립되었고 열심히 치료받으셨습니다. 약이 잘 받으시는지 배에 찼던 복수는 더 이상 차지 않아 숨쉬기도 훨씬 쉬워졌고 식사도 잘 하시게 되며 눈에 띄게 건강해진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시민의원을 연계한 덕분에 보양죽도 지원을 받게 되었고 입맛이 없을 수 있는 환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복지관에서 연계할 수 있는 음식은 전부 연계하여 맛있게 드실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렸습니다. 돌봄 지원은 병원에 가는 일이 많아 병이 다 나은 후에 필요한지 판단하기로 하였습니다. 


몸이 좋아지면서 하루에 한 시간 운동도 하셨고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복지관에 오셔서 인사를 하고 가시기도 하였습니다. 치료가 어땠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시시콜콜 서로 얘기 나누며 항상 빼먹지 않았던 얘기는 몸이 좋아지면 무엇을 할지였습니다. 이사도 하고 싶다고 하셨고 일을 다시 할 수 있을지도 고민하셨습니다. 자녀들이 잘 됐으면 하는 마음도 얘기하셨습니다. 항상 마지막 얘기는 치료가 어떻게 계획되어 있고 어떻게 치료받을지로 끝났습니다. 


치료가 힘들 때도 있고 쉽게 지나가기도 했지만 언제나 김철수님은 용감하셨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잘 받아 좋은 결과를 보이다가도 다른 곳에 전이된 결과가 나오기도 해 실망하시다가도 힘내보자 격려하면 바로 힘을 내시며 열심히 치료받으셨습니다. 


치료는 계속됐고 김철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함께라는 용기.


왼쪽 눈을 실명하셨습니다. 전이된 암세포는 그렇게 흔적을 남겼고 하필 오른쪽 눈은 백내장이 와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입원 치료 중에도 오던 김철수님의 문자를 한동안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픈 와중에도 핸드폰으로 책을 다운받아 보는 것이 취미이던 김철수님은 이번에는 정말 실망하시는 듯했습니다. 그때만큼은 저도 선뜻 격려의 말씀을 드리기가 죄송할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힘드실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또 힘을 내신 것은 김철수님이었습니다. 


한쪽이라도 보여야 살겠다며 백내장 수술을 계획하시고 의사와 일정을 잡고 몸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에 식사도 잘하시려고 하고 운동도 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정말 대단하세요!”

보이지 않는 컴컴함 속에서도 다음이라는 계획을 위해 노력하시는 김철수님께 저절로 나오는 감탄이 나왔습니다. 


“나 때문에 다들 애쓰는데 나도 힘내야 줘.”


이제는 자신만의 계획이 아닌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셨습니다. 저는 언제나 이 자리에 김철수님을 응원하며 함께하겠노라 말씀드렸습니다. 


수술을 하시기 전 독립했던 아드님이 집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비록 일을 나가야 해 저녁에만 함께 있지만 그것은 김철수님께 또 다른 힘을 주었습니다. 수술이 끝나고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보게 되어 좋다며 다음 항암 일정을 얘기하시는 김철수님의 목소리는 밝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항암치료 후 예후가 좋지 않아 입원 기간이 늘어났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집에만 계시는 일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치료 일정을 얘기하고 치료를 열심히 해보겠다는 얘기는 여전했기에 희망을 가지고 응원과 항상 함께 하고 있음을 알려드렸습니다.


어느 날,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연락을 못 받으시더라도 꼭 회신을 해주셨는데 연락은 없고 전화도 계속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상한 예감에 이틀 동안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습니다. 혹시라도 안 좋은 소식을 들을까 주저하다 여동생에게 연락을 드렸고 상태가 좋지 않아서 중환자실에 계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놀라서 말을 잇지 못하는 저에게 그래도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내일은 일반실로 옮기실 거라고 하셨습니다. 일반실로 옮기면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전화를 끊으며 부디 상태가 나아지시라 빌었습니다. 


하루하루 김철수님과 직접 연락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동생분과 소통하며 김철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지 않았습니다.


9월의 어느 월요일, 출근을 한 저는 부고를 확인하였습니다. 이미 발인이 지나 가볼 수는 없었지만 부고장에는 세 명의 자녀들 이름이 올랐고 번듯한 장례식장이 나와 있었습니다. 


어쩌면 그분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회복하는 듯했었지만 너무나 오래 방치되었던 몸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픈 몸으로 홀로 버티면서도 누구보다 미래를 꿈꾸고 계획하던 김철수님. 비록 무뚝뚝하고 강한 고집에 자녀들과 멀어졌지만 항상 자녀들을 걱정하고 위하던 아버지. 이중 삼중 처한 위기에 홀로 쓰러지려 했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열심히 노력할 줄 아시던 분. 비록 아픈 결말을 맞으셨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는 김철수님! 


주변에서 자녀들과 단절되어 홀로 죽음을 맞으시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한번 비켜가기 시작한 접점은 핏줄로 연결된 혈연도 끊어버릴 정도로 무섭게 영향을 미칩니다. 김철수님의 의뢰는 ‘홀로’시작되었지만 의뢰를 허락하시는 용기를 내고 함께하는 것을 허락하며 누구보다 용감한 분으로 거듭나셨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계획과 미래만 얘기하시던 분이 언제부터인지 주변 분들을 위해 움직일 줄도 아시는 분이 되었고 멀어진 자녀들도 그분을 다시 받아들이고 돌아와 그분 곁을 지켰습니다. 


홀로 외롭던 그분은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용기로 마지막은 ‘홀로’가 아닌 ‘함께’로 마무리하셨습니다. 

마지막 불꽃을 함께라는 따뜻함으로 가족들을 밝히고 저에게 존경할 수 있는 분으로 남아주신 김철수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강종합사회복지관 우인정 통합사례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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