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숙(가명)어르신은 친해지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한 분입니다.

어려운 가정의 맏이로 태어나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도 갖지 못하여 문맹이신 어르신은 가족의 경제를 위해 8살 때부터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3명의 동생들까지 뒷바라지하며 평생을 사셨습니다.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어! 그래도 살려고, 동생들 뒷바라지하려고 손이 닿도록 일했지.”

라고 말하시며 눈물 흘리실 때는 덩달아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든 평생이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생계를 꾸리시던 중 신내림을 받는 경험도 하시게 됩니다. 오랜 시간 점집을 하시며 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늦은 나이에 아들도 가졌지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안정된 학교생활을 위해 정착된 점집을 그만두며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어려움까지 닥치며 정신병원에 입원하실 정도로 힘든 상황은 계속되었습니다.

아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지만 아들과의 관계는 순탄치 않았고 점집까지 그만두며 바라셨던 아들의 학교생활도 고등학교 중퇴라는 결과를 맞게 되었습니다. 낙담하신 김영숙님의 스트레스는 더욱 깊어지고 건강도 좋지 않았습니다. 거주할 곳도 마땅치 않을 정도로 경제 사정도 힘들었습니다. 기초생활수급 선정 이후 매입임대주택에서 지내시며 그나마 지낼 곳은 걱정하지 않게 되었지만 작년 아들이 입원시킨 병원에서 허리협착증으로 수술을 하면서 수급비 관리를 어르신과 함께 살고 있던 아들이 하게 되며 고작 25만원을 받으며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허리협착증 수술 후 제대로 요양을 하지 않아 거동이 힘들었고 병원에 가지 못하게 되어 복용하던 우울증 약도 끊게 되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우울과 불면으로 일상생활이 힘든 중에 성곡동행정복지센터의 의뢰로 어르신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들한테서 돈 좀 뺏어줘요! 나 이렇게 살다가는 죽어! 아들을 내쫓아줘요.”

만나 뵙자마자 터져 나온 어르신의 울분은 저희가 상상할 수 없는 깊이였고 강제할 수 없는 상황임을 설명할 때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사람들이 나에게 뭘 해주려고 왔나’하는 불신의 눈빛에 몸 둘 바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어르신이 바라시는 욕구에 바로 응답하지 못하더라도 어르신의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창구로라도 남기 위해 만남은 지속되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조금이나마 관계가 형성되었습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신청해 생활지원사 선생님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아들에게도 수급비 반환에 대해 말씀드리고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조금이나마 어르신의 욕구를 이루어드린 것 같다는 생각도 하며 어르신께 조금만 기다려 보자고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께 급하게 전화가 올 때까지는요.

“나 약 좀 사다줘. 허리가 너무 아파.”

아들과 한집에 있는 것이 너무 싫어 나오셨다가 낙상하셨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넘어지고 허리와 다리가 아파 견딜 수 없다는 말에 부랴부랴 파스와 소염진통제를 사다 드리고 병원에 가시자 설득했지만 아들에게 집을 맡기고 절대 갈 수 없다는 말만 하셨습니다.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 밥을 줄이고 화장실 가는 횟수도 줄일 정도로 고통스러워 하셨지만 병원거부는 계속되었습니다. 아들은 “엄마 수발할 생각 없으니 병원에 가.”라며 말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며 3주가 넘도록 어르신을 방치하였고 저희가 지원금을 받아 병원에 모시고 가겠다는 말에도 어르신은 거부를 계속하셨습니다.

설득과 설득, 거부와 거부, 아들에게 집을 맡기면 무슨 꼴이 날지 알 수 없어서, 돈이 없어서, 약을 먹으니 좋아지는 것 같아서...등등 거부의 이유는 너무나 많았습니다. 아들에게 설득해달라 말했지만 아들은 자신이 말해도 듣지 않는다는 말로 회피하며 어르신을 탓하였습니다.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에 먼저 부천희망재단 소원우체통을 신청하여 지원금을 받았고 병원을 알아보며 긴급의료비 신청에 대한 절차도 협의를 하였습니다. 준비를 마친 후 댁에 방문하여 병원 진료를 위한 준비가 되었으며 지원도 가능하다는 안내를 드리고 병원에 가자 설득하였지만 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른 방법으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르신께 지원금을 받기 위한 통장을 개설하여야 한다는 명목으로 새로운 통장을 만들고 어르신만 원하신다면 그 통장을 수급비 지원 통장으로 바꿀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아들과 협의해보겠으니 병원 진료 생각해보시라 하자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어르신이 계신 자리에서 아들과 수급비 관리 이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병원 진료에 대해 처리하겠으니 수급비를 이전해주십사 한참을 설득 끝에 아들의 알았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그 상황을 보고 계신 어르신이 병원 가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동안 힘들었던 설득과 거부의 과정에서 오던 실망이 한 번에 해소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병원 진료를 하는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통장을 만들기 위해 아프신 어르신을 모시고 가야 했으며 고통이 심하셨던 어르신은 병원에 못간다고 짜증을 부리시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병원에 모셨고 결과는 고관절골절과, 허리골절을 진단받았습니다. 왜 이제 왔느냐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어르신이 제 눈치를 보셨고 입원 절차를 밟아 입원을 하게 되었을 때 “정말 고마워.”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후 병원에서 3주 이상 있을 수 없어 퇴원 후 요양병원에 입원시켜드렸고 아직 많은 절차와 회복의 과정이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가끔 요양병원 퇴원시켜달라는 요구로 절 힘들게 하시지만 골절을 입고 고통이 심하셨을 텐데도 병원을 거부하셨던 어르신의 마음은 어떠셨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퇴원하겠다고 갖은 짜증을 다 부리시고 난 이후에는 “그런 얘기 선생님이니까 했어. 나 잘 버텨볼게.”라고 말하시면 이 어르신은 밀당의 고수시구나 하며 혼자 웃기도 합니다.

홀로 세상을 헤쳐나오며 많은 배신의 경험과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오시면서 교육의 기회도 없이 가족을 위해 애쓰셨지만 어렵기만 한 삶은 계속되었습니다. 늦게 낳은 아들에게도 방치되다시피 하며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세상을 살아오며 스스로 방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사셨던 김영숙 어르신.

어르신의 거부는 자신을 좀 봐달라는, 그리고 저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검증과정이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문맹으로 세상에 있는 표지판도 읽을 수 없는 어르신은 스스로 나름대로 인생의 표지판을 세우고 그 표지판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고 계십니다. 조금 더 나은 표지판을 매일 다시 세울 수 있는 거름이 되는 사례관리사가 될 수 있기를 빌어보며 저의 백번째 권유를 끝내 저버리지 않으신 어르신의 쾌유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