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출근길, 환승 버스를 눈앞에서 놓쳤다. 버스 도착알림 전광판은 반딧불처럼 빛을 반짝이며 친절하게 알려줬다. 다음 버스는 20분 후에 도착한다고.
‘20분쯤이야’ 하면서 여유 있게 버스를 기다렸다. 매서운 바람이 냉혹하게 불어와도 20분쯤은... 했다. 그러나 2분이 지나면서 지옥을 맛봤다. 칼바람은 뺨을, 귀를, 손끝을, 어깨를, 두 다리를, 발끝의 살을 에일 듯이 도려냈다. 우리는 어쩐지 버거운 삶의 이면을 대면하게 되는 순간, 알게 된다. 바람이 불면 풀이 먼저 눕는다는 것을. 어디에 든 신체 한 부위라도 녹이고 싶다는, 오로지 그 생각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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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엉뜨(엉덩이 뜨듯).맘뜨(마음 뜨듯)한 온열 의자입니다. |
필자는 지난 2020년 버스 정류장의 ‘온열의자’에 관한 기사를 썼었다. 기사는 작성했지만, 시간에 쫓겨 다니다 보니 느긋하게 앉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환승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정류장 ‘온열의자’에는 아무도 없었다. 동공이 흔들렸다. 얼른 앉았다. 이런! 진짜 따뜻했다! 의자의 본질은 몸을 의지해 쉴 수 있게 하는 ‘앉는다’는 의미이고, 앉음은 안락함· 편안함·쉼을 뜻하는데 바람 부는 길에서 따뜻함까지 갖춘 의자를 만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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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사우체국정류장 온열의자에 앉아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
의자가 말을 건넨다. "나는 온열의자입니다. 몹시 추워 보이는군요. 누추하지만 내 자리에서 잠시 앉았다 가시지요. 잠시의 따뜻함과 조금의 편안함을 안겨드려요. 짧은 쉼이라도 나와 함께 겨울 하늘을 한번 올려보아요. 하늘도 추위에 떨면서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라고 말을 하네요. 나의 삶은 평생 고독하지만 외롭지 않아요. 나는 앉음의 안락함, 앉음의 편안함, 앉음의 쉼을 넘어 따뜻함까지 당신에게 줄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내(의자)가 한 개 정도는 있잖아요. 당신의 삶에는 어떤 의자가 있나요?" 라며 의자가 위로의 말을 던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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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남부역 버스정류장의 온열의자에 앉아 있는 시민들 |
부천시민들은 위한 ‘온열의자’는, 지난 2018년 1개소의 버스 정류장에 1대 시범 사업으로 시작해 2019년 6대(6개 버스정류장), 2020년 20대(17개 버스 정류장), 2021년 24대(24개 버스 정류장)를 확대해 현재는 47개소에 설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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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내역 버스정류장 온열의자에 앉은 시민 |
‘온열의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외부 온도가 18도 이하일 때 열을 내는 의자다. 의자 온도는 34도에 설정되어 있다. 의자의 원리는 전기로 돌아간다. 그뿐만 아니라, 부천시는 추운 겨울에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을 위해 온기 쉼터도 설치했다. 온기 쉼터는 야외 온도보다 내부 온도가 2~4도 높다. 사는 게 별거인가. 너무 푹신해서 졸음이 나올 지경의 안락의자는 아니지만, 몸도 마음도 따뜻하게 데워주는 ‘온열의자’.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걸어주는 친구 같은 ‘온열의자’를 47개나 내어주는 부천, 이만하면 살만한 도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