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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부천레지던시 입주작가 안젤라 샹마 부천 에세이 <장소의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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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2.27  18: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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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의 인상> 

     안젤라 샹마 지음/노지양 번역

    이 짧은 에세이는 사실 한 작가의 에세이는 아니며 나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김지혜씨와의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지혜(김지혜씨)와는 원래 친분이 두터웠던 사이로 수년 동안 멀리서도 연락을 주고 받았기에 한국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뻤다. 우리는 책, 일러스트, 산, 교통, 창작의 고통, 음식, 서울/런던/베를린/한국/영국/독일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함께 작품을 하기로 하면서 우리 두 사람은 두 매체 사이 대화를 시켜 보기로 했다. 내가 부천에서 보낸 시간 동안 받은 인상과 관찰을 글로 쓴 다음 지혜에게 보내면 지혜가 내 글에서 받은 느낌을 일러스트로 그려 나에게 보내주었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재즈 연주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부르고 응답하기(call and response)이고 텍스트와 이미지 사이를 오가면서 조금씩 변화하는 질문과 생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체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면 놀라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고 가능성으로 가득한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젖힐 수도 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어떤 글과 그림이 이어질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우리가 결정한 딱 한 가지 기준은 상상이건 현실이건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다음은 우리가 함께 만든 작품의 제목이다. 장소의 인상

    내가 받은 한국의 첫 인상은 인천 공항에서 부천까지 오는 길에서 생겨났다. 공항은 건물과 도로가 가득한 섬에 위치한다. 이 섬은 항공학적으로 설계된 매끈한 건축물, 드넓은 이착륙장, 복잡하고도 체계적인 버스와 지하철 노선이 있는, 여행과 기술의 중추(허브)라 할 수 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갯벌을 지나며 그제야 한국이 매우 큰 반도 국가라는 사실을 떠올렸는데 공항에서 나가는 길에 이렇게 빽빽한 빌딩 숲이 있은 줄은 몰라 깜짝 놀라고 말았다.

      ▲ 1  
     

    유리와 석조로 이루어진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층 아파트들은 내가 베를린이나 런던에서 본 어떤 주거용 건물보다 높았다. 나의 고향인 데본 주의, 풍화에 의해 형성된 암석인 토르들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닐 것이다. 화강암의 건축물들이 하늘과 땅 사이의 공간에서 형태를 빚어내고 있었다. 엄지손가락을 바짝 세운 것 같기도 하고 언덕 위에 작은 성냥개비들이 꽂혀 있는 듯도 했다.

      ▲ 2  
     

    한국은 땅 면적의 70퍼센트가 산으로 덮여 있다. 인상적이었던 스카이라인도 주변의 산봉우리들과 비교하면 꼬마들처럼 작아 보인다. 빌딩숲은 산골짜기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산의 포옹을 받고 있다. 건물은 산으로 흡수되고 산은 하늘로 흡수된다. 차 안에서 보면 서서히 퍼지는 잔물결을 닮았고 도시는 자연을 반복하는 메아리처럼 느껴진다. 건물들이 이룬 작은 산인 저 빌딩 숲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렇다면 산에는 얼마나 많은 동식물들이 살고 있을까? 물론 내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한 종류의 새, 나무, 버섯, 벌레, 관목, 풀, 이끼, 고양이, 민물고기들이 산을 터전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한 때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가 살았다고 한다. 호랑이 수 마리가 울창한 숲속을 어슬렁거렸다고 한다. 이제 그들은 사라졌다.

    부천을 벗어나 북한과 마주하고 있는 파주로 들어가면서 산세가 보다 뚜렷이 드러난다. 가을이고 산은 타는 듯한 붉은 단풍들이 울긋불긋한 색깔을 뽐내고 있다. 두 종류의 나무가 가장 두드러진다. 하나는 은행나무다. 고약한 냄새의 열매로 유명한 은행나무는 샛노란색 잎을 가득 안고 있다가 서서히 떨군다. 은행나무 이파리의 색은 너무 밝고 선명해 거의 형광에 가깝고 나뭇가지는 사그라드는 햇살을 품고 있다. 또 눈에 자주 들어오는 나무는 한국 단풍나무다. 붉은 색은 너무나 붉어 만화에 나오는 새빨간 피를 연상시킨다, 현실과 허구가 함께 낳은 산물 같다.

      ▲ 3  
     

    부천을 천천히 걷는다. 낯선 도시를 걷는 행위가 특별한 이유는 내가 얼마나 한계에 처해 있는지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도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고 이 거리는 어디로 이어지는지, 내가 지금 방금 지나친 곳이 어디인지, 내가 지금 어느 장소로 발을 들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한다는 건 이러한 한계를 직면한 뒤 다시 해체하는 일이기도 하다. 호기심 가득한 발걸음을 미지의 세계에 머뭇머뭇 들여 놓다가 어느덧 일정한 리듬으로 익숙해진 장소들을 거니는 일이다.

      ▲ 4  
     

    내가 머물던 방은 19층으로 도시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전망을 갖고 있으니 처음에는 이 도시의 크기와 규모를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으려면 내 발로 직접 걸어 다녀야만 했다. 마치 비디오 게임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멈춰 있을 때 내 주변은 수만 화소로 나뉜 암흑이었다가 느릿느릿 걷기 시작하면 앞이 환하게 밝혀지면서 더 넓어진 화면 속으로 들어간다. 새로운 모퉁이와 골목과 언덕이 드러난다. 도시는 오로지 이 방식으로만, 도보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시시각각 달라지는 거리의 결과 질감은 이 도시가 어떤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는지 보여준다. 부천이라는 도시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갈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막연히 걸으며 관찰한 것은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이대로 걷다 보면 논밭이 펼쳐져 있을 수도 있었고 서울까지 닿을 수도 있었다. (물론 걸어가기에는 둘 다 꽤 멀긴 하다)

      ▲ 5  
     

    내가 한국에 있었던 시간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7주가 흐르자 거리 풍경이 완연히 다르게 변모했다. 오색찬란했던 도로 옆 인도는 어느새 황량한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마치 민들레 홀씨를 입으로 크게 후 불어버리는 것처럼 이파리들이 비바람에 우수수 떨어졌다. 배수로와 인도에 떨어진 단풍잎들은 커다란 마대 자루에 담겼다. 단풍잎이 수북이 쌓였던 중앙 공원 한 가운데 마대 자루들 또한 수북이 쌓였다. 이러한 변천이 신기한 이유는 변화를 겪은 순간에는 그다지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다시 돌아보았을 때 실감이 난다는 점이다. 또한 계절의 변화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도시가 각각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 시켜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흐르는 시간은 모든 장소에 흔적을 남긴다. 우리가 세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우리는 다른 모든 인류와 필연적으로 같은 것을 공유한다. 바로 시간과 시간과 흐름이다. 그 시간 속에서 삶은 계속되고, 한계는 깨어지고, 글과 그림은 쌓이고, 우정이 형성되고, 어떤 장소의 인상이 생겨난다.

      ▲ 6  
     

    *관련 링크: https://blog.naver.com/bucheon_unesco/22301770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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