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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문익점, 한국 반도체를 이식하다.대한민국 반도체의 초석을 놓은 선구자의 Homecoming Day
백선영 복사골부천 시민기자  |  1000djraj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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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1.19  14: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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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하면 자동으로 삼성! 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반도체 분야에서 삼성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그 삼성이 처음 반도체 분야에 진입할 때 주춧돌을 놓은 사람과 장소가 있다.
    강기동(89) 박사와 부천이다.

      ▲ 레전드가 나타났다!  
    ▲ 레전드가 나타났다!

    2023년 1월 18일 10시. 도당동 온세미컨덕터(이하 온세미). 이날 행사는 90을 목전에 둔 강기동 박사의 방문 요청을 온세미가 받아들임으로 성사되었다. 회의실에는 강박사와 그의 반도체 후예라 할 수 있는 온세미의 중역들이 각자의 포지션 설명과 그동안의 회사변화를 브리핑하고 있었다. 브리핑 중간중간 강박사의 질문은 쏟아졌다.

      ▲ 온세미 임원들과 담화 중인 강기동 박사  
    ▲ 온세미 임원들과 담화 중인 강기동 박사

    “요즘도 HF(불산) 많이 써요?” “예 많이 쓰고 있습니다.”
    “지금 쓰고 있는 것 순도가 어느 정도 되나요?” “xx%, **%, $$% 를 쓰고 있습니다.”
    “그거 국산이에요?” “네 국산입니다.”
    “일본에서 생산하는 것과 비교하면 순도가 어떤가요?” “국내서 생산되는 게 일본 것보다 더 순도가 좋습니다”
    강박사의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강기동 박사는 1934년생 함경도 함흥 출신인 공학박사다. 1957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업 후, 도미하여 오하이오 주립대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 미국 모토로라에서 fab 공정을 연구하다 당시로선 최첨단 기술인 *C-MOS 공정을 개발했다. 이 기술로 모토로라의 트랜지스터 부분을 가장 최고의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C-MOS : Complementary MOS 집적도 높은 제품의 발열 제어에 유용한 기술

      ▲ 공로패 전달식우)온세미컨덕터코리아의 대표 강병곤  
    ▲ 공로패 전달식   우)온세미컨덕터코리아의 대표 강병곤

    그때나 지금이나 첨단과학기술 유출에 대해 미국은 매우 엄격하다. 그렇기에 미국기업의 눈을 따돌리며 한국에 반도체 기술을 접목하기까지 많은 고민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강박사는 회고한다.
    그 시절 우리나라에도 반도체 회사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싼 노동력의 과실만 따 먹으려 들어 온 외국 반도체 조립회사들이 다였다. 그런 한국에 반도체 기술을 이식한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 반도체의 발원지 1976년 당시 한국반도체  
    ▲ 반도체의 발원지 1976년 당시 한국반도체

    “일본은 일찌감치 동양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되었고, 우리는 나라를 빼앗겼다 남의 힘으로 나라를 되찾았지만, 찾자마자 전쟁까지 해 더 못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국가에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강박사의 뜻과 의기투합한 이가 있었는데, 강박사가 대학 시절 심취했던 취미인 무선통신(HAM)으로 알게 된 김규한씨. 그는 자신의 소유지 부천 땅을 계약서 한 장 없이 강박사의 사업부지로 넘겨주고 투자를 단행한다. “합시다” 한마디로 허허벌판 도당동에 건물이 올라가고 생산 장비가 발주됐다.
    1973년 그렇게 한국 최초의 반도체 기술이 들어간 회사<한국 반도체>는 첫 삽을 떴다. 1973년은 부천시가 시로 승격한 해이다.

      ▲ 아직도 그대로 있는 강기동 박사의 흔적들좌)상량대 중)상량대가 있는 현재 사원용 식당 우)옛 건물에서 추억에 젖은 강기동 박사  

     

      ▲ 한국반도체를 품고 세계의 반도체로 거듭난 온세미컨덕터  
    ▲ 한국반도체를 품고 세계의 반도체로 거듭난 온세미컨덕터

    강박사의 C-MOS 기술을 접목한 제품(디지털 시계칩) 생산은 대성공이었다. 하지만 혹독한 유류파동과 석연치 않은 경영적인 문제로 인해 1977년 강박사는 회사를 완전히 삼성으로 넘긴다.
    삼성반도체로 간판을 바꿔 단 후에도 반도체라는 특성상 그룹 내에서도 ‘돈 먹는 하마’였기에 이리저리 계열사를 전전하며 투자를 받다, 드디어 84년 부천 공장에서 64KDRAM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부천이 명실공히 한국 반도체 굴기의 산실이 된 것이다! 그 후 삼성의 부천 반도체 부분은 그동안의 매몰 비용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 승승장구했다.
    그러다 IMF를 맞고 1999년 미국 페어차일드에 4억5000만 달러에 매각되었다. 글로벌로 회사를 운용하던 페어차일드는 다시 2015년 같은 미국 기업인 온세미컨덕터에 글로벌 회사 전체를 24억 달러에 매각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박사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 박사님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부천의 온세미는 현재 미국 본사로부터 1조 4000억원의 투자를 유치하여 라인을 증설 중이다. 목적은 요즘 대세인 전기차, 신재생에너지에 꼭 필요한 실리콘 카바이드 웨이퍼(SiC) 양산을 위해서다. 이 기술은 규소를 탄소와 결합시켜 열에 강한 반도체를 만드는 방법인데, 규소를 기화 시킨 상태에서 웨이퍼로 만드는 것이라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첨단 기술이다.

      ▲ 즐거운 시간  
    ▲ 즐거운 시간

    그렇기에 SiC 제품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못 따라가는 제품이 될 거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기존의 실리콘으로 만든 반도체는 높은 열에 취약하기에 전기차나 태양광과 같은 집적도 높은 제품에서 SiC 제품의 활용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발열에 강한 C-MOS를 만든 강기동 박사의 한국반도체 후예들다운 행보라 할 수 있겠다.

      ▲ 1조 4000억이 투자되는 SiC 라인 증설 착공식(2022년 7월7일)  
    ▲ 1조 4000억이 투자되는 SiC 라인 증설 착공식(2022년 7월7일)

    여기까지가 반도체의 양지 같은 스토리다. 이제부터 양지가 있기 위해 음지로 살아야 했던 강기동 박사의 그 후 이야기다. 회사 정리 후 기술을 가지고 참여했던 강박사에겐 아무런 대가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보다 더 답답한 일은, 빈손으로 미국으로 돌아간 그에게 미국의 기술을 유출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평생 따라다녀 반도체 회사엔 접근이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 임원진과 오찬을 즐기는 강기동박사  
    ▲ 임원진과 오찬을 즐기는 강기동박사

    문익점은 목화씨를 무사히 들여와 별 탈 없이 잘 살았지만 반도체인 강기동은 그렇지 못했다. 그런 그가 89세의 노구를 끌고 자신의 황금기를 바친 장소를 돌아보는 모습은 제3자의 눈에도 회한이 그대로 전해졌다.
    “한국반도체는 내가 낳은 자식이 맞습니다. 그 자식이 남의 품에 들어가 장성했습니다. 저는 삼성도 온세미도 잘되기만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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