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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의 옛 모습을 찾아서 '고지도로 본 부천'부천시립박물관 8월18일~11월 27일까지 특별전 개최.
안소정 복사골부천 시민기자  |  asja11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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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9.14  19: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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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시립박물관 기획전시실 '고지도로 본 부천' 8.18~11.27.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고지도와 사료를 통해, 부천의 뿌리와 발전 과정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는 특별기획전 《고지도(古地圖)로 본 부천(富川)》이 오는 11월 27일까지 부천시립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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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지도로 본 부천'은 고지도 제작기법의 발달, 부천 지역의 지명 표기, 인구변화의 모습을 만나 볼 수 있다.

    고지도는 지역의 풍속, 인구, 교통 노선 등의 여러 정보를 담고 있으며 지역의 인물과 역사를 기록해  효율적인 국가통치를 하기 위해 제작됐고, 20세기 이후의 측량 지도와는 달리 오래전에 제작된 옛 지도이다. 오늘날 남아있는 대부분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져 부천지역의 표기가 부평으로 되어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료가 전해주는 부천', '고지도가 보여주는 부천' 등 총 2부로 구성된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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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사료가 전해주는 부천'.

    부천지역은 역사적으로 삼한의 하나인 마한에 속했다. 54개 소국 중에 부천은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고대국가가 출현하면서 백제에 병합됐다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빼앗은 이후 주부토군이라고 하고, 통일신라시대에는 장제군, 고려시대에는 수주, 안남, 계양, 길주, 부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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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은 마한의 54개 소국중 '우휴모탁국'으로 추정.
      ▲ 고려시대의 부천  
    ▲ 고려시대의 부천은 수주, 안남, 계양, 길주, 부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 조선시대의 부천  
    ▲ 조선시대의 부천은 부평으로 불리며 한강과 인천을 연결하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부평으로 불리며 1500년대 기록인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인구가 954명 (현 부천지역은250여 명으로 추산)이었다. 당시 부평은 강화와 김포를 거쳐 한성 및 해주와 연결되는 한강 수로에 위치했기 때문에 행정구역상 수원진관에 소속되어 인천을 속읍으로 둔 군사적 요충지였다. 조선시대 부평은 조운 수로의 길목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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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부평군읍지의 부평지도.

    1899년 경인 철도 '소사역'이 개설되면서 부천 지역은 급성장을 시작한다. ‘부천'이란 지명은 일제강점기인 1914년 경기도가 2부 200군으로 결정된 행정구역이 변경했을 때 부천군이 태어났다. 일본 조계 지역과 면일부를 합해 인천부로 삼고, 나머지 지역과 부평군을 합해 부천군으로 개편했다. 이름은 부평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 에서 따왔다는 설과 내(川)가 많아서(富) 부천이라고 지었다는 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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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 '고지도가 보여주는 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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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고지도’는 조선시대 동국지도, 조선팔도고금총람도, 대동여지도, 청구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등 조선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총 20점이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일보 류코쿠대학, 국사편찬위원회,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 박물관 등에서 소장한 원본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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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도(輪圖)는 지관들이 풍수를 보거나 여행자들이 방위를 확인하기 위해 사용하는 나침반.

    고지도에서는 부천의 옛 이름 '부평'을 찾아야 한다. 조선의 수도 방어 체계가 담긴 지도를 보면 부천이 수로로나 육로로나 모두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군사적 중요성 때문에 고려 때 이미 '안남도호부'가 설치됐고, '계양도호부'를 거쳐 1310년에는 '부평부'가 된다. 
    18세기 지도에는 큰비가 내리면 서울로 가는 길이 끊겼다고 기록됐고, 19세기에는 서울 양천으로 가는 경로에 '서울로 가는 큰길'이라고 표시돼 부천과 서울 사이 왕래가 빈번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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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세게 후반 '청구도' 부평지역 확대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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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전기. 중국 중심 세계관이 반영된 세계지도로 오늘날 부천지역인 부평이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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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1861년 22층 목판본 대축척 조선지도책으로 거리와 방향, 위치의 정확성을 추구한 조선시대 전도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오늘날 부천지역을 부평으로 기재하고 있다.

    관람객 김현주님은 "부천에서 40년이상 살고 있는데요. 이번에 ‘고지도’를 통해서 부천의 역사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왔어요. 다양한 지도를 통해 부천의 지명도 찾아보고, 사료와 지도를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어요.”

    부천시립박물관 김대중 관장은 "부천은 조선시대 250여 명에 지나지 않는 인구에서 현재 82만여 명의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부천의 역사흐름을 이해하고 행복한 도시의 발전을 그려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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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관의 벽면 스크린에서 부천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이번 특별전은 2023년 부천시 승격 50주년을 앞두고 고지도와 다양한 사료를 통해 부천의 뿌리를 찾고 변화된 모습을 알아보기 위해 기획됐다.
    부천시는 앞으로도 시 승격 50주년을 계기로 사연이 담긴 생활 유물을 기증받는 등 시민이 참여하는 부천시 역사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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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시립박물관: 오전 9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전화번호: 032-684-9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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