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시’를 두고 사르트르는 말했다. 무언가를 하기에는 언제나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간이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다 눈이 모래주머니처럼 무거워져 자꾸 눈꺼풀이 내려앉는 자정과도 같은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모두도 흔히 말하길 하루 중 제일 애매한 시간이 ‘오후 3시’라고들 한다. 뭔가를 시작하기도 그렇다고 끝내기에도 아쉬운 시간, ‘오후 세시’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54일째 기록을 장식한 지루한 장마, 7개월째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코로나19 시대의 ‘오후 세시’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연구해야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송내동 거리로 나서 보자. 그거 좋겠다.

송내동에는 2015년 12월에 개관된 ‘송내어울마당’이 있다. 송내어울마당은 지하 3층 지상 5층 규모다. 마당 입구에 한복을 입은 국악인들이 분주하게 웅성거리고 있다. 눅눅한 폭염 속에 이들은 뭘 하려는 것일까. 관중석 계단에 걸터앉았다.

▲ 판소리 한마당

송내어울마당 지하1층에 한국예총부천지회가 있다. 한복을 입고 가야금을 들고 북을 잡고 부채를 쥔 그들은 부천예총 국악인들이었던 것이다. 어려운 시기인 만큼 팸플릿도, 관객도, 홍보도 없었다. 송내어울마당 무대복판에 길게 드리워진 플래카드엔 8월 14일(금) 오후3시 ‘한여름의 국악힐링’이 적혀 있었다. 한국예총부천지회 주최·한국국악협회부천지부 주관·부천시가 후원하는 공연이었다.

▲ 경기 서도민요를 부릅니다~

첫 무대는 창부타령·청춘가·도라지타령·천안삼거리 등으로 경기·서도민요가락이 송내동네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경기민요의 특징은 서울·경기지방의 민요를 뜻하는데 노래의 느낌이 대체로 맑고 경쾌하고 말붙임 새가 독특하며 선율의 굴곡이 유연하다. 서도민요는 길게 끝부분을 콧소리를 섞어가며 탈탈 떨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무대는 가야금산조, 판소리, 한국무용으로 이어졌다.

제일 신나는 무대는 판소리 한마당이었다. 세 명의 소리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소리를 내지르며 추임새를 넣을 땐 어깨가 들썩였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의 합성어로 여러 사람이 모인 놀이판에서 부르는 노래다.

▲ 공연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부천예총국악인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특정 계층만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가무를 즐겼으며 신산한 삶을 노래와 춤으로 승화시켰다.

▲ 가야금산조가 이어집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54일 기록적인 장마가 끝난 뒤 찾아온 어마어마한 폭염 속에서 무관중·무홍보로 송내동 주민 곁으로 잔잔하게 다가 온 ‘오후 세시’의 국악공연, 부천예총공연은 주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리 없는 응원이었다.

무기력했던 ‘오후 세시’, 꿈과 희망을 갖게 해 준 우리 시 문화예술의 역할은 힘이 쌨다. 절망적인 쇼생크 감옥 담장 안에 울려 퍼진 모차르트의 음악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