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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으로부터 방임된 아이들의 ‘희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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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03  18: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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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어요. 좀 도와주세요.”
작년 설 명절을 앞두고 정신이 없던 어느 날, 매우 큰 키에 날카로운 눈매의 청년(김첫째/가명)이 날씨만큼이나 차가운 표정으로 동 주민센터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청년(김첫째)의 부모님은 사이가 안좋아 별거를 한지 10년이 넘었고, 이후 김첫째(가명)와 세명의 동생들은 외할머니의 손에 길러졌습니다. 김첫째는 집을 나와 혼자 생활한지 오래 되었으며, 남은 동생들은 외할머니와 같이 살다가 최근 외할머니의 치매가 많이 악화되면서 동생들을 이제 본인이 책임져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믿기 힘든 가정상황

김첫째(가명/24세/남)는 중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였고, 김둘째(가명/19세/여)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를 안가기 시작하여 현재 고3의 나이임에도 외할머니와 함께 동생들을 챙기며 주로 집안에서만 생활을 하였습니다. 더구나 김셋째(가명/14세/남)와 김넷째(가명/7세/여)는 출생신고도 안되어 있어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상황으로 학교나 어린이집도 다닌 적이 없었습니다.

상담을 시작하자 청년은 믿기 힘든 본인의 얘기를 조금씩 털어놓기 시작했고, 이들 가족은 국가와 지역사회의 도움없이 세상과 거의 단절된 채 살고 있었습니다. 특히 셋째와 넷째는 출생신고도 안되어 있어 도움을 주려해도 쉽지 않았으며 ‘정말 요즘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믿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 청년의 이야기 >

어릴 적 엄마와 아빠에 대한 기억은 매일 싸우는 모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밤에 야반도주하듯 갑작스런 이사도 여러 번 하였고, 그러면서 나(김첫째)와 동생(김둘째)은 주민등록도 자주 말소가 되고 자연스레 학교도 못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아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엄마는 살 수 있는 집만 얻어주고 잊혀질만하면 한번 씩 찾아오는 것이 전부여서 우리는 외할머니의 보살핌 속에 함께 살았습니다.

갑자기 생겨버린 셋째와 넷째 동생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한다며 어린 남자아이(김셋째/당시 5세)를 집에 데리고 왔고, 누구냐고 물으니 ‘외삼촌이 몰래 바람피워서 낳은 아들인데 키울 사람이 없어서 엄마가 데려왔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엄마는 우리 여동생이라며 아기(김넷째)를 하나 더 데리고 왔고, 우린 그때부터 친형제인 나와 둘째, 사촌동생인 김셋째, 이복동생인 김넷째, 그리고 외할머니까지 다섯 식구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외할머니는 맨날 화를 내고 수시로 욕을 하는 욕쟁이였습니다.
밥을 차려주고 빨래를 해주면서 항상 욕을 하고 화를 냈으며 엄마가 셋째와 넷째를 데리고 왔을 때는 정말 심하게 욕을 해댔습니다. 엄마라는 사람은 우리를 모두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나가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그래도 욕쟁이 외할머니는 우리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할지언정 항상 밥을 차려주고 챙겨주었습니다.

나는 항상 북적거리는 집과 가끔씩 찾아오는 엄마가 정말 싫어서 차라리 혼자 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여 어린나이에 집을 나와 혼자 살았고, 아르바이트만 해도 혼자 먹고는 살 수 있었습니다. 욕쟁이지만 그래도 동생들을 챙겨주는 외할머니가 계셨기에 나와서 혼자 살 수 있었는데, 최근 외할머니의 치매증세가 심해지면서 급하게 요양병원으로 입원을 하게 되어 이제는 나만 바라보는 동생들을 내가 챙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빠는 가끔 연락이 되지만 어떠한 도움도 받은 적이 없고 엄마와는 최근 몇 년간 아예 연락이 두절되어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외할머니까지 아프게 되니 이제는 정말 동생들을 돌봐줄 사람이 나밖에는 없는 상황입니다.


나보다 더 불쌍한 동생들

어릴 때는 중학교도 제대로 못나온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나를 이렇게 만든 그 집이 너무 싫어서 가출하여 혼자 살았는데, 이제와 돌이켜보니 동생들은 나보다도 더 안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문턱만 넘고 고3의 나이에도 집에서 외할머니 잔심부름만 해 온 둘째와 중학교 1학년과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야 할 나이지만 출생신고가 안되어 그 근처에도 못 가본 셋째와 막내까지. 이제부터라도 동생들이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지만,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도 막막했습니다.

우선 두 동생의 출생신고부터 하려고 법원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지만 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법원에서 하는 말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엄마가 오면 된다니... 이 모든 일을 만든 사람이 누군데...’
법원을 쫓아다니느라 하던 일도 그만두게 되었고, 당장 외할머니 병원비와 동생들과 먹고 살 일도 걱정이 되는 상황이라 결국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주민센터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 사례관리사의 이야기 >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이 얘기가 정말 사실일까?’ .
청년(김첫째)의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정방문을 하였습니다. 외할머니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면서 김첫째가 지인이 피부관리실로 쓰는 영업장의 원룸으로 동생들을 급하게 데려와 같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원룸에는 피부관리실에서 쓰는 베드가 구석에 놓여있고 아이들의 살림이나 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학교도 어린이집도 다니지 않고 수년 째 집안에서만 주로 생활했던 아이들이라서 늦잠 잘 것을 예상하고 오후 2시에 갔지만, 김첫째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이제 막 일어나 잠이 덜 깬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더 밝고 착했으며, 김첫째의 말대로 셋째와 넷째는 정말 출생신고가 안되어 어려서부터 집에서만 생활을 한 상태였습니다. 셋째는 친부모가 누구인지 다들 정확히 몰라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고, 넷째는 어려서부터 엄마 없이 둘째의 손에서 자라서인지 곁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아 둘째와의 애착관계가 매우 강해보였습니다.


막막했던 사례의 先 시급한 문제, 後 중요한 문제

가정방문을 하고나니 이제 이 사례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데야할지, 어떤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중요한 문제’와 ‘시급한 문제’로 나누어 일처리를 하기로 했고, 셋째와 넷째의 출생신고가 제일 중요한 문제이긴 하지만 시일이 오래 소요될 수 있어 시급한 문제인 ‘생계유지 방안 마련’ 및 ‘학업유지와 학습멘토링’을 우선 지원하기로 하였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먼저 기초생활보장수급을 신청하고 셋째와 넷째는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사회복지전산관리번호’를 부여해 수급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아동급식을 신청하여 G드림카드 발급, 변변한 가전제품이 없어 동 복지협의체에서 후원을 받아 냉장고 지원, 주1회 밑반찬 지원 등 생계유지와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서비스를 연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업의 시기가 중요하여 둘째를 데리고 교육청에 가서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원서접수를 하도록 도와주었고,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학교 밖 청소년 지원사업’ 담당자를 만나 시험공부 등 전반적인 학습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세명 아이들의 학습멘토링을 요청하였습니다.


엄마 찾아 ‘수배령’

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문제인 ‘출생신고’는 법적 절차의 확인을 위해 법률사무소의 자문을 먼저 받기로 하였고, 친혈족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가구구성원 4명의 유전자검사를 먼저 해야한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유전자 검사를 위해서는 연락이 두절된 엄마를 먼저 찾아야 했고, 행방불명된 엄마를 찾기 위해서는 두 명의 자녀를 출생신고 하지 않은 엄마를 ‘아동보호법 위반’으로 신고하여 찾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천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엄마를 ‘명백한 방임’으로 판정하여 아동보호법 위반으로 자녀들의 동의를 얻어 전국에 수배령을 내렸습니다.

수배령이 내려지고 1개월여 만에 아이들의 엄마를 찾게 되었습니다. 셋째와 넷째는 모두 본인이 출산하였다고 아이들 엄마가 시인을 하였고,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자녀들을 출생신고 하지 못했다는 황당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엄마의 무개념과 무책임한 행동으로 셋째와 넷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외국인도 국민도 아닌 이 사회의 ‘이방인’으로 집안에서만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조사를 위해 엄마와 아이들이 경찰서에 모였지만, 첫째는 엄마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다른 동생들도 엄마에게 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본인과 동생들의 삶이 이렇게 된 것이 엄마의 무책임한 행동과 무관심 때문이었으니 그 분노가 얼마나 클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셋째와 넷째 ‘대한민국 국민’이 되다

사실 확인을 위해 엄마와 아이들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여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였고, 동 주민센터에서 사례관리 사업비로 검사비를 지원하였습니다. 검사결과 셋째와 넷째의 아버지는 각각 다르지만 모두 엄마가 낳은 자녀였습니다. 엄마는 셋째와 넷째의 출생신고를 본인이 하길 원했지만, 첫째가 거부하였고 본인이 직접 동생들의 출생등록을 마쳤습니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셋째와 넷째의 주민등록번호가 생겼습니다.

주민등록번호가 생긴 후 제일 먼저 셋째의 초졸 검정고시 원서를 접수하였고 둘째가 신청할 때 같이하지 못한 아동급식도 신청해주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피부관리실로 쓰는 영업장에서 성별 구분없이 생활하던 주거지를 이전하기위해 막내가 출생신고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장어린 넷째 명의로 위탁가정 전세임대주택을 신청하였습니다.

 

< 에필로그 >

얼마 뒤 아이들은 전세임대주택에 선정되어 방이 세 개인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부족한 생활용품(책상, 가스레인지, 이불 등)은 관할 동 복지협의체에서 후원하여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한층 넓고 깨끗해진 집을 보며 아이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모든 보는 이들을 더욱 흐뭇하게 만들었습니다.


제2의 인생 Start

이후 둘째와 셋째는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하여 열심히 공부를 시작하였고 그중 둘째는 최근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즘 첫째는 서울에서 근로활동 중이고 셋째는 중졸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막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잘 적응해 밝은 얼굴로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놀라운 기적같은 변화가 이 가정의 아이들에게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출생신고가 안되어 학교나 유치원도 갈 수 없었던 셋째와 넷째는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어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해 다니고 있으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에 못나가 주로 집에서만 생활하던 둘째도 벌써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관심과 협력이 만든 기적

이렇듯 아이들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주변의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셔서 가능하였습니다. 출생신고를 위해 법률사무소의 무료법률 자문을 시작으로 주민센터 복지과에서는 유전자검사 비용마련을 위해 사례관리 사업비 지원 및 출생신고와 관련된 행정업무를 도와주었습니다. 또한 행방불명된 엄마의 신변확보 및 수배를 위해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에서 도움을 주었고 부천시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아동보호법 위반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협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생계유지 방안 마련을 위해 주민센터와 복지과에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선정 및 아동급식 지원, 밑반찬 지원 등을 위해 다각도로 협조해 주었고, 동 복지협의체는 가전제품 및 생활용품 후원을 하여 일상생활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는 아이들의 학업유지 및 학교 입학을 위해 학습멘토링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교재비와 교통카드까지 제공해 주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례가 그렇겠지만, 이번 사례는 특히나 민·관의 여러 기관들 도움이 없었다면 사실상 진행이 어려웠던 사례로, 각 민·관의 기관들이 아이들의 상황을 알고 모두 발 벗고 도와주면서 그 동안 우리사회에서 방임되었던 아이들이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으로 빠르게 합류하는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게 처신하면서 오래도록 출생신고도 못하고 사회 속에서 방임되었던 아이들이 오히려 지역사회와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면서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냈습니다.

주변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여러분의 작은 관심과 사랑이 주변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내며, 사례관리가 여러분이 기적을 만드는 일에 늘 함께 합니다.

복지정책과 사례관리팀 여운진 통합사례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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