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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과 기술학교에서 시작된 부천 私學명문 학교들
구자룡  |  kujl5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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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2  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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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은 1973년 시로 승격되면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열 손가락도 되지 않았던 학교가 지금은 1백30여개나 된다.

 1936년 유일한은 유한양행을 설립하고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 일명 깊은구지 성주산 아래 공장을 지었다. 그 후, 1942년 서울에 있던 본사를 소사로 이전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돌입한다. 해방이 되고 얼마 후 6.25 전쟁으로 나라가 어수선했던 1952년 12월 12일 공장 옆에 허름한 건물에 고려공과기술학교를 설립했다. 기술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주로 남자들이 다녔는데 그 학교가 지금의 유한공업고등학교가 되었다.

1950년 빈민운동에 앞장섰던 소사성당의 신성우 마르코 신부는 원미산 아래 성당(지금 성가양로원 안에 있는) 지하에 야학을 세우고 어려운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던 중, 학식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어 기술을 익혀주어야 겠다고 마음먹고 1957년 소명가정기술학교를 설립했다. ‘소명(素明)이란 소사를 빛내라’ 라는 뜻으로 편물, 수예, 재봉 등을 가르쳤다. 주로 여학생들이 다녔는데 지금의 부천 사학의 명문 소명여자 중·고등학교가 되었다.

서울 노량진에 있던 동양중공업고등학교 설립자인 김봉주는 1957년 소사읍 소사리에 동양공과기술학교를 설립하였다. 자활학교를 꿈꾸며 기계와 전기 기술을 가르쳤는데 졸업생에게는 1급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여 사회에 일꾼으로 내보냈다. 1970년 학교운영이 어려워지자 학교법인 동양학원이 인수를 하고 1980년 3월, 지금의 동양미래대학교와 합병을 하고 문을 닫았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 독립만세를 부르다 투옥을 당했던 독립운동가 한항길은 부천군 문학면 출신이다. 젊은 시절 신문 기자, 교원 등 여러 일에 종사하던 그가 1958년 부천군 소사읍 심곡리 일명 진말, 허허벌판에 소사공과기술학교를 세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방직, 염색, 기계, 축산, 토공분야를 교육시켰다. 그 학교가 1978년에 부천공업전문대학으로 개교하여 오늘의 부천대학교로 급성장하여 부천을 빛내는 학교가 되었다.

  ▲ 부천대학교의 전신 ‘소사기술공과기술학교’ 개교 당시 전경(1958년 4월).  
▲ 부천대학교의 전신 ‘소사기술공과기술학교’ 개교 당시 전경(1958년 4월).

일제 강점기, 일본은 자기네들만 다니는 소사심상소학교(지금의 부천남초등학교)를 소사역 앞에 세우고 한국인이 다니는 학교는 저 멀리 북쪽 논바닥(지금의 부천북초등학교)에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나 부천교육의 시작은 의식 있는 사람들이 세운 야학이나 기술학교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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