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부천

상세검색
복사골이야기복사골 그때 그시절
1970년대 왕성했던 ‘4H운동’을 아시나요?
양경직  |  essay1214@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5.02  11:39:02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블로그 구글 msn

원미구 역곡1동(옛, 벌응절리) 안동네 마을 입구 삼거리에 벌응절리 4H구락부 회원들이 50여 년 전 세운 ‘4H 표지석’이 남아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부천 곳곳의 마을 입구마다 서 있었지만, 지금은 도시개발로 다 사라지고 역곡동 표지석만이 골동품처럼 제자리를 온전하게 지키고 있다.

당시에 표지석을 세웠던 마을토박이 박효재(朴孝栽, 76세) 씨에 의하면 벌응절리(현, 역곡동)에 있었던 경기도농사시험장 직원들이 마을 청년들에게 표지석을 세워야한다고 독려해서, 벌응절리 4H구락부 공선기(작고) 회장 주도하에 뒷산에 나뒹굴던 상석을 안봉식(작고)·박효재·김종남 네 명이서 목도하여 메고 내려와 세운 것이라고 고증해 주었다.

  ▲ 원미구 역곡 1동 안동네 마을입구에 남아있는 ‘4H표지석’과 50여 년 전 표지석을 세운 박효재(76세)씨.  
▲ 원미구 역곡 1동 안동네 마을입구에 남아있는 ‘4H표지석’과 50여 년 전 표지석을 세운 박효재(76세)씨.

상단에는 네잎클로버 안에 ‘Head(智)·Heart(德)·Hand(勞)·Health(體)’의 머리글자를 따서 네 개의 H자(字)를 넣고 아래에는 ‘새벽’을 새겨 넣었는데,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 활동을 한다는 의미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 일요일이면 아침 일찍 빗자루를 들고 마을회관 마당에 모여서 체조를 하고, 마을길을 청소하거나 때로는 마을로 들어오는 행길 양쪽 길섶에 코스모스 등의 꽃을 심어 마을을 깨끗이 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열심히 활동을 하였다. 그때마다 마을 이장은 <새마을 노래>를 틀어주었다.

당시 벌응절리 청년들은 평소에는 토끼 키우기, 풀베기(퇴비증산) 활동을 하다가, 경기도 4H 경진대회에 나가는 등 다른 동네에 비해 더욱 왕성하게 활동을 했다고 한다. 보이는 사진은 범박리(범박동) 4H구락부 남녀 회원들이 뒷산에 천막을 치고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천막 앞에 태극기와 4H 깃발과 새마을 깃발이 시대를 대변하듯 펄럭이고 있다.

  ▲ 1974년 범박리(범박동) 4H구락부 회원들이 범박리 뒷산에 천막을 치고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 1974년 범박리(범박동) 4H구락부 회원들이 범박리 뒷산에 천막을 치고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요즘 청소년들은 4H운동을 잘 모를 것이다. 1960~70년대 지긋지긋한 가난을 떨치고 농촌의 부흥과 청소년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심어 주었던 운동으로, 훗날 자조(自助) 정신을 앞세운 새마을운동의 모태가 되었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도 4H운동이 있기는 하지만 예전 농촌시대에 등대 불빛 같은 아련한 희망으로 다가왔던 상징성이나, 열성적인 활동에 비하면 지금은 대단히 미미한 편이다. 1970년대 왕성했던 4H운동이여, 다시 응답하라!

생생부천 데이터는 공공누리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포토뉴스
부천툰
영상뉴스
  • 혐오시설이 문화시설로! <부천아트벙커B39>개관
  • 전국 비보이!! 부천으로 가즈아~!…<제5회 부천전국비보이대회> 개최
  • <부천시립예술단 창단 30주년 기념콘서트> 개최!
  • 부천 3대 꽃축제 <꽃피는 봄이오면>
칼럼
사람중심, 인간욕구에 기반한 사회적 비용절감

사람중심, 인간욕구에 기반한 사회적 비용절감

최근 들어 기업가정신이 경제발전과 사회활력, ...

고시공고 등 각종 정보 제공

트위터 페이스북 소셜허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