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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9단 필수품 '아이디얼 미싱'을 아시나요?
홍보기획관실 박경필  |  kppark@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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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0  14: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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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우리 어머니들은 바느질 솜씨가 여간 아니었다. 당시 주부들의 일상에서 한 땀 한 땀 바느질에 투자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았다. 그 즈음 우리 어머니들 앞에 이른바 ‘자동 바느질 기계’인 ‘재봉틀’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당시 주부들이라면 누구나 한 대쯤 장만하고 싶었던 필수용품 1순위가 바로 ‘미싱’이라 불리던 재봉틀이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 수출 효자였던 섬유·의류산업의 부흥을 일으킨 주인공도 바로 ‘미싱’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 산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미싱’이 우리 부천에서 생산된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 1960~70년대까지 송내동에서 당시 명품 재봉틀인‘아이디얼 미싱’이 생산되었다. 사진은 조립이 끝난 완제품 모습.  
    ▲ 1960~70년대까지 송내동에서 당시 명품 재봉틀인‘아이디얼 미싱’이 생산되었다. 사진은 조립이 끝난 완제품 모습.

    ‘아이디얼 미싱’이 바로 우리 부천에서 생산된 재봉틀이었다. ‘아이디얼 미싱’은 당시 ‘부라더 미싱’과 함께 주부들로부터 명품 재봉틀로 인기를 끌었다. 1957년 4월 아이디얼공업(주)이 설립되어 1963년 10월 송내동(당시 부천군 소사읍 구지리)으로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생산활동에 들어갔다.

      ▲ 아이디얼 미싱 제조 생산라인 풍경.  
    ▲ 아이디얼 미싱 제조 생산라인 풍경.
    이 회사는 각종 미싱, 전기기구, 난방기구 등을 생산했고 1961년에는 미군에 군납까지 했다. 1962년 4월에는 미국 시애틀 세계박람회에 출품하여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같은 해 5월에는 국내 최초로 중동에 미싱을 수출하였고 이어서 태국, 서독, 미국에 수출 길을 열었다.

    연도별 주요 생산품을 살펴보면 재봉틀은 1973년 1만5500여대, 선풍기는 1974년 3만6000여대, 전기믹서기는 1975년 7천8백여대 등이었다. 1970년 아이디얼전기산업(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부천시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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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즉시 정정하겠습니다.
    (2014-11-26 11:51:26)
    소사인
    기사 중'10월 내동...'으로 이전' 부분에 내동은 송내동'입니다^^
    (2014-11-26 10:5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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