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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두 번 벗었지만 '당당한 주전!'부천FC 28번 '쌕쌕이' 김태영을 만나다
김덕영 시민기자(블로그)  |  kabbalah10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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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13  11: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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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의(이윤의)랑 눈이 마주쳤다. 헤르메스를 향해 달려가고 싶은 나에게 윤의는 앉으라고 눈짓을 보냈다. ‘그래 우리 약속했지’ 약속대로 윗옷을 내리고 쪼그려 앉아 아장아장 걸었다. '아장아장 세레모니.' 프로 데뷔 나의 첫 골 세레모니이다.
 
5월 5일 광주와의 경기를 앞두고 87라인 동기(이윤의, 허건, 김덕수)들과  ‘어린이날 기념 세레모니’를 하자고 약속했다. 내가 골도 넣었고 세레모니도 제대로 소화했는데 이날 경기의 결과는 부천FC 패. 첫 골이 패배에 묻혀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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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 : 부천FC 1995
  
K리그 주간 베스트에 오르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이틀 뒤 ‘K리그 7라운드 주간 베스트 일레븐’에 내 이름이 올라갔다. 처음 이 소식을 듣고 얼떨떨했다. 내 발에 공이 닿은 시간동안 베스트란 명함이 새겨진 적은 처음이다. 이 소식이 나에겐 고맙고 쑥스러울 따름이다.
 
내가 뛰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엄청 빠르다고 한다. 하지만 난 빠르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다리가 짧아서 빨라 보이는 걸까? 100m 달리기 기록 13초. 물론, 지금도 저 기록이 나올지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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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데뷔는 싱가폴 ‘코리아슈퍼래즈’
생각해 보니 부천과의 인연은 오래되었다. 부천FC에 오기 전 나는 예원예술대 축구부 2학년을 마치고 싱가폴 프로팀 ‘코리아슈퍼래즈’에 입단했었다. 한국축구선수로 구성된 이 팀의 감독은 ‘부천SK’출신 전경준 감독님이었다.
 
축구부 2학년 말 ‘지금 실력으로는 프로데뷔는 어려울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만 바라보고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더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취업을 결정했다. 대학 축구부 조현 감독님에게 취업자리를 부탁했다. 감독님은 나에게 축구를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다며 ‘코리아슈퍼래즈’ 전경준 감독님을 소개시켜주었다. 전 감독님은 그 당시 선수를 뽑고 있었고 경기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싱가폴로 이끌어 주었다.  
 
예술대 출신 축구선수
"어느 학교 출신이에요?" "전주예원예술대요." 축구선수인 내가 예술대 출신이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축구선수가 예술대를 졸업했다?  상관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축구부가 있는 학교, 지금도 많은 후배가 훈련하는 예원예술대가 내 모교이다.
 
싱가폴팀에는 부천FC의 ‘영원한 캡틴’ 박문기 형이 있었다. 2010년 구단 사정 악화로 ‘코리아슈퍼래즈’팀이 해체되었고 더이상 싱가폴에 있을 이유가 없어졌다. 귀국하고 나니 갈 곳이 없었다. 축구는 하고 싶은데 활동할 곳이 없었다. 나는 회사생활을 하며 축구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았다.
  
TV에서 만난 구단 내가 선수라니.
나보다 먼저 부천FC에 입단했던 문기 형 덕분에 2010년 7월 나는 부천FC 유니폼을 입었다. 유니폼을 입고 나니 싱가폴에서 선수생활 할 때 본 부천FC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그 당시 프로그램을 보며 ‘저 팀에서 뛰고 싶다’ 고 생각했는데...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TV속에서 봐왔던 팀에서 내가 뛸 줄이야… 당시 부천FC는 3부 리그팀. 내 플레이가 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입단 후 선수들의 실력에 놀랐다. 
 
나는 이 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없었다. 출전수당만으로 버텨내야 하는 챌린저스리그 선수생활..혼자 힘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축구화를 벗었다. 다시 대학 때처럼 취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두 번째 직업 생산직 근로자
친구 소개로 들어간 회사는 선박에 들어가는 케이블을 만드는 회사였다. 이곳에서 생산직 근로자로 일했다. 하루 2교대 12시간 근무, 철야근무도 마다하지않고 24시간 내내 일만 죽어라 했다. 늘어나는 통장잔고만큼 그라운드에 대한 그리움도 너무 커졌다. 푸른 잔디밭, 거친 숨소리..  다시 뛰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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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이 형 고마워  
고민 끝에 당시 부천FC ‘원래 빠른 사나이’ 정현민 형을 찾아갔다. 다행히 형이 내 마음을 알아주어 곽창규 감독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감독님과 동료 선수들 그리고 부천FC는 나를 내치지 않고 다시 받아주었다. 오히려 정민 팀장님은 ‘니가 필요해서 우리가 다시 데리고 온 거야. 그러니깐 그렇게 생각하지마.' 라며 다독여주었다. 나를 다시 받아준 모두에게 감사했다.

다시 돌아온 부천FC. 나는 이제 즐기며 축구 할 수 있다. 다시 내 발과 공이 맞닿아지는 순간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있는 훈련시간이 손꼽아 기다려졌다. 그리고 주말마다 있는 경기는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컴백 부천FC 모든게 행복해
이제는 내가 엔트리에 들고 안 들고는 중요치 않았다. 부천FC의 축구선수라는 사실만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다. 어떻게든 튀어 주전이 되려고만 노력했던 지난 날의 축구선수생활을 정리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정말 축구를 즐기는 선수생활을 하자고 다짐했다. 
 
2012년 새로 오신 곽경근 감독님과 함께 즐기며 축구를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부천FC의 주전이 되었다.  지난 해 중순 우리 팀이 프로팀으로 재 창단 될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프로무대 입성. 모든 선수들이 좋아했다. 그러나 “많이 데려가지는 못 한다” 란 감독님의 말에 “여기서 부천FC생활도 끝이구나. 이번에 남지 못하면 후회 없이 그만두는 거다” 라며 홀로 은퇴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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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문자 한통에 가슴 벅차
선수선발로 분위기가 뒤숭숭한 무렵 곽경근 감독님의 문자를 받았다. “태영아 드래프트 넣었냐? 꼭 넣어라” 그 문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느낌은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감독님이 나를 끌어준다는 생각에 너무 기뻐 잠을 이루지 못했다드래프트 발표 날 나는 부천FC 28번 미드필더 김태영 선수로 이름이 올랐다. 성장한 부천FC. 그 속에 나도 같이 있게되었다.
 
막상 팀이 소집되고 나니 내노라 하는 신인선수 후배들이 주전 자리에 앉았다. 시즌 시작 후 네 번째 경기까지는 엔트리에 들지못했다.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들과 함께 경기 날 관람석에 앉아 시합을 봤다. ‘팬들과 일반석에 앉아 있다 보니 내가 왜 여기 있지? 내 자리는 저기인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4월, 드디어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다
지난 4월 원재(송원재)가 상무로 입대하고 난 후 안양전의 경기 엔트리가 발표됐다. 그 명단에 내 이름이 들어있었다. 그것도 주전선수로.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일찍 엔트리 명단에 포함되다니…나는 늘 그래왔다. 어느 팀에서든 시즌 초반에는 항상 뒷전이었다. 그런데 프로로 승격된 부천FC에서 내 이름이 이렇게 빨리 엔트리에 올라갈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데뷔 전 안양과의 경기가 끝난 후  ‘발재간이 좋다. 빠르다’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 나는 팀에서 뛰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비록 내가 힘들더라도 동료선수들이 힘들어 할 때 한 발 더 뛰어 골 성공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동료들과 팬들에게 이쪽저쪽에서 뛰어주어 고맙다란 소리를 듣고 싶다.
 
'성장통이 끝나면 나도 큰다. '
166cm의 키. 그래서인지 초면에 말을 편하게 하는 후배 선수들이 더러 있다. 예전엔 그런 소리를 들을 때 마다 “나 27살 김태영이야” 라고 말했지만 이젠 상관하지않는다. 내 키는 지금도 자라고 있기때문이다. 그냥 아직 성장통을 겪지 않았을 뿐. 유상철(국가대표)선수처럼 아픔의 시간이 지나고나면 나도 20cm이상 자랄 것이라 믿는다.
 
홀로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항상 나의 건강을 걱정하신다. 예전에 훈련 도중 양쪽 다리 십자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그 때부터 어머니는 나만 보면 항상 "몸조심 해라. 다치지 마라" 고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팀에서 어떤 플레이를 했는지는 관심이 없다. 오로지 내 몸 상태만 걱정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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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헤르메스는 그 존재로 감사한 사람들이다. K3시절부터 보았던 서포터들은 원정경기든 홈경기든 항상 같이 해왔기 때문에 언제나 같은팀 동료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약 다시 골을 넣으면 부천FC 엠블렘에 키스하며 헤르메스를 향해 달려가고 싶다. 조만간 헤르메스에게 꼭 보여주고 싶다. 그 모습을.
 
 
김태영 선수 SNS
 
김태영 선수의 K3시절  해프닝 하나
고양 원정 경기로 기억된다. 그 당시 경기장은 공원 안이었던 것 같다. 유모차 끌고 산책 나온 사람들, 공원에 놀러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우리는 원정 경기를 하고 있었다. 경기는 진행되고 있는데 경기장 밖 트랙을 조깅하던 한 고양시민이 붕 떠오른 우리팀 선수의 축구공을 맞았다. 노발대발하던 그 사람을 구단 직원이 병원까지 데려간 적이 있다.
 
인터뷰를 닫으며  
아직 성장통을 안 거쳤다는 김태영 선수는 그동안 언론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고 불쌍하게만 가공되어서 아쉬웠답니다. 직접 만난 태영선수는 너무도 밝은 웃음이 있었고, 모든 말에 '감사하다, 고맙다, 행복하다'란 단어가 빠지지 않네요. 작은 것을 소중히 알고 그 존재를 감사히 아는 마음을 닮고 싶습니다.‘나를 만나주어서 고맙다’라고 전해주고 싶다는 김태영 선수와 여자친구와의 만남 시간이 백일이 가까워진답니다. 다음 경기에서는 백일기념 세레모니 볼 수 있을까요? 두 분 예쁜 사랑 쭉∼이어나가길 바랍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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