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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잡으러 왔다가 '부천FC에 푹 빠졌다'부천FC 정해춘 대표
김덕영 시민기자(블로그)  |  kabbalah10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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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08  22: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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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FC1995사무국에서 만난 정해춘(57, 부천시 소사구 송내2동) 대표.  그의 명함에는 대표란 직책이 새겨져 있지만 그 이름에 걸 맞는 거들먹거림은 전혀 볼 수가 없다. 동네조기축구회 회장님 포스라고나 할까? 털털하면서도 편안한 모습의 정 대표가 부천FC에 발을 붙인 사연은  참 드라마틱하다.

 
 부천FC와의 인연? 아들 미행하다 시작됐어요.
말 그대로 공부 등한시한다고 생각되는 아들을 미행(?)하러 왔다가 부천FC의 터줏대감이 되어버렸다.
 
2, 3이 되었는데도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주말마다 종합운동장을 쫓아 다니는거야.. 홈은 그렇다치고 포항, 울산, 부산 등 원정까지 나가는데.. 어느 날 문득 도대체 아들이 뭘 하고 다니는지 궁금해진거지.. 그래서 인마 나도 같이 가보자 해서 처음 오게 됐어.”
 
이렇게 호기심으로 부터 시작된 부천FC와의 첫 만남.. 그것이 정 대표 인생의 제2 전환점이 되었다.
 
부천FC를 만나기 전 그는 평범한 11녀의 아버지이자 가장이었다. 일에 파묻혀 사느라 딱히 취미 생활 하나 즐기지 못하는 이 시대 평범한 회사원.. 그의 과거는 그러했었다. 하지만 어느새 정대표는 아들과 함께 매 경기를 쫓아다니는 부천FC의 서포터가 되어버렸다. 어린 친구들과 같이 알레~~~알레~~~’를 따라 부르는...
 
처음에는 세대 차이가 나서 섞이기 힘들었지. 그곳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찾다 보니 아이들 간식 챙겨주고 동영상 찍어주는 거였어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때 함께했던 서포터들이 시민구단 모임의 시작이었다.
 
구단과 함께 신나게 축구장을 찾았고 선수들과 함께 뛰는 심정으로 경기 내내 긴박감을 늦출수가 없었다. 그렇게 경기를 끝마치고 나면 밀려드는 피로감이 굉장했지만 그것이 정대표의 축구 사랑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런 피로감에서 오는 보람이 축구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었다.
 
걱정했던 아들은 잘 자라주었다.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었던 아들의 서포터 활동은 오히려 아들에게 득이 되었다. 학업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주말 경기 응원을 통해 완화시켰다. 그런 아들이 이젠 대학도 졸업했고 군대도 다녀 왔다. 그리고 지금은 부천FC의 영상제작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렇게 온 가족의 엔도르핀이 된 부천SK와의 인연은 정씨 부자에게는 활력소였다. 하지만 달콤한 사탕 뒤에는 힘든 고비가 찾아오는 법. 
 
 
 2006년 팀의 연고지 이적 
정 대표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충격에 빠진 아들이 아버지 우리 부천에서 이사가요. 부천만 아니면 될 것 같아요라는 말에 정 대표는 속된말로 멘붕이었다.
 
그에게 부천은 제2의 고향이다. 결혼과 동시에 터를 잡고  20년 가까이 살아온 부천.. 부천시민으로서 훌륭한 축구팀을 갖고 있다는 것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하루 아침에 뒤통수를 타격 당하니 나도 부천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시의 일을 회상했다.
 
하지만 정 대표와 뜻을 같이한 서포터들은 "더 이상 대기업 자본에 이끌려 다니는 구단은 안 된다. 시민이 주인이 되는 구단이 있어야 한다." 며 팀 창단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부천시의 연고지 협약이었다.
당시 서포터들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창단팀에 관심 없는 관계자들을 설득하는것은 산 넘어 산이자 자갈밭이 연속이었다. 좀 더 지켜보자라는 두루뭉술한 거절만이 되돌아왔고 시민구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싸늘한 지적도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중에 뜻을 같이한 국회의원 배기선, 시의원 한선재(현재 부천시의회 의장) 등이 나타났고 그들과 함께 힘을 모아 팀 창단에 탄력을 가했다. 우여곡절 끝에 팀은 창단되었지만 지난해 7월 두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부천FC 조례안 부결 
기권표를 던진 시의원들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설득하고 대 시민 설명회 준비를 하느라 몇 일 밤낮을 세웠다. 다행히 조례안이 재 상정되어서 부천시의 재정적 지원을 받게 되었지만 부결과 재상정의 기간이 반복된 만큼 스폰서 협약도 날아갔다. 정 대표는 “7~8억 원 정도 끌고 올 수 있었는데 성사가 안됐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온 부천FC의 근성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관중 수 1만 명만 확보되면 스폰서 협약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부천FC에 바라는 점은 안정적 시민구단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시에서 지원을 받는다고 누군가 얼마를 협찬했다고 구단을 좌지우지 하는 세력을 배제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사무국장급 이상 간부들의 무임금 자원봉사란 조례를 제정해 아예 못을 박아버렸다.
 
현재 부천FC사무국은 상근직원 4명을 제외한 나머지 직원들에게는 무임금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아무런 경제적 대가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힘은 무엇일까? 정 대표는 내가 얼마를 보탰고, 어디에 이만큼 썼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돈에 대해서는 계산하지 않는다라며 말을 아꼈다. 구단 관계자들은 대표님이 팀에 도움주신 금액은 계산하기 힘들다. 서포터 시절부터 10년 동안 한결같이 도움 주셨으니 집 한 채 값은 나오지 않을까요?”라는 추측을 한다.
 
하지만 정 대표는 “매일 선수와 직원들과 생활하며 구단에서 카메라가 필요하다면 카메라 사주고 선수들이 배고프다면 회식시켜주는 그런 일" 이라며 "이런 일에 지갑 문 여는 것은 두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난 토요일 8년 만의 개막전, 정 대표는 이날 만감이 교차했다.  3부리그 시절 같이 고생한 정현민 박문기 선수를 보내고, 주목 받는 선수 임창균이 점수를 내는 등 팀이 경기를 이겨주었다. 정대표는 구단이 안정화 되면 뒤에서 후원하고 싶다며 구단도 전문적 두뇌대표가 필요하다. 빨리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라는 심정을 밝혔다.
 
정 대표의 꿈은 부천FC1995가 누구의 재정적 지원 없이 자립하는 것이다. 이제 첫 단추를 채우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선수들에게 정 대표는 축구화 한 켤레 맘껏 지원 못한다. 더 좋게 대우해주지 못해 많이 미안하다고 말한다.
 
 정 대표가 가 꿈꾸는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자생적 구단운영을 위해서는 부천시민이 즐기는 축구가 되어야 한다. 부천SK 시절보다 더욱 애착이 간다는 부천FC. “구단운영도 축구경기처럼 여러분들이 도와주셔야 잘 굴러갑니다.” 라며 관중 1만명 도달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발걸음 해주기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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