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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부천레지던시 입주작가 트리샤 박 부천 에세이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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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2.27  18: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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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향> 

    트리샤 박 지음/노지양 번역

    미국에서의 어느 날 밤이었다. 열 살 정도였던 나는 잠 못 들고 천장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나중에 우리 엄마, 할머니와 내가 낳은 아이들이 서로 말이 안통해서 대화를 못하게 되면 어떡하지?

    열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아프고 한없이 슬퍼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할머니에게 한국말을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그 당시 우리 가족은 줄리어드에 진학하게 된 나를 위해 뉴욕으로 막 이사했었고 할머니는 우리가 구한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자그마한 침실 하나짜리 아파트에서 같이 생활하고 계셨다. 그리고 이 시기 내가 할머니에게 열심히 배워 터득한 건 강한 부산 사투리가 배인 한국어였다. 나의 한국어를 몇 마디만 들으면 사람들은 으레 이렇게 묻곤 했다. “그런데 미국에는 언제 오신 거예요?” 이 질문에는 항상 웃음이 동반되곤 했는데 아마 나의 부산 억양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신기하고 의외였기 때문이리라. 그러니까 이런 식이라고 보면 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한국 여자가 영어를 할 때만은 미국 남부, 이를테면 앨러배마주 사람들처럼 모음을 길게 늘여서 말한다면 어떨까. 해운대 바닷가에서 서서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헤에이 여얼~(Hey y’all)”

    사실 나의 한국어가 부산말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 30년이 지난 후인 작년까지도 엄마가 태어나 성장한 장소, 한국어로 ‘고향’에 단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하지만 평생 동안 한국을 향한 강한 이끌림,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욕구를 느껴왔다. 귀향(homecoming)에 대한 의식이었다.

    그런데 집이란 무엇일까?

    다른 2세대 한국계 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디아스포라의 경험을 털어놓다 보면 우리 사이에 면면히 흐르는 공통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집을 향한 그리움이었다. 모국에 대한 호기심이기도 했다. 다들 언제 꼭 시간을 만들어 여행을 하고 싶다고, 우리 가족에 대해 몰랐던 모든 역사, 우리 부모님과 선조들에 대해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들, 그들의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았을 기쁨과 역경과 행복과 비극에 대해 모두 알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한국계 디아스포라 작가로서 이번 한국 방문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고 부천 레지던시를 통해 얻게 된 한국 생활의 기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값진 선물이었다.

    먼저 레지던시가 예술가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적어도 일정 시간 동안 우리는 창작을 나의 삶의 가장 중심에 놓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다. 전업 예술가로 살다 보면 여러 겹의 고충을 소화해야 하고 많은 예술가들이 레지던시의 기회를 갖길 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일상에 잠깐 삽입된, 오로지 창작만을 위한 시간은 기본적으로 혼자서 해나가야 하는 이 의미 있는 작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고 때로는 몇 년 동안 재정적인 보상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이럴 때 부천의 레지던지 같은 곳은 당장 눈 앞의 결과를 기대하는 바쁜 현대의 삶에서 예술가들이 작품만을 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나 같은 경우 열 세 살 부터 전문 바이올리니스트로 연주 활동을 해왔고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연주할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공연이나 행사 때문에 외국에 자주 나가는 뮤지션이나 아티스트들을 잘 알 것이다. 일 때문에 떠나는 여행, 말하자면 출장은 필연적으로 체류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고 내 시간은 내 시간이 아니며 일정을 따라가고 의무를 수행하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린다.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세계 곳곳을 여행해왔다고 할 수 있지만 내가 공연을 위해 운 좋게 갈 수 있었던 그 수많은 장소를 실제로는 거의 보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공항, 호텔, 콘서트홀만 오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부천 레지던시가 나에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부천 레지던시에 머물면서 비로소 여유를 갖고 한국 문화를 탐험하고 계획을 실행에 옮기면서 한국에서의 경험을 내 작품에 유기적으로 침투시킬 수 있었다. 이곳에서 공식적인 행사나 사적인 자리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이들과의 대화와 만남은 내가 지금 쓰는 작품에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여성이 한국의 거리를 두 발로 걸으며 이질적인 두 문화 사이를 스위치를 켰다 켜듯이 오갔고 크고 작은 경험이 내 글의 장면을 바꾸고 내적 구조를 변화시켰다. 레지던시 경험은 마치 삼투현상처럼 나의 내면과 작품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한국의 음식을 먹고 문화를 접하고 언어를 들었다. 실시간으로 한국을 체험했다. 이 경험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방식으로 내 글의 뉘앙스를 미묘하게 굴절시켰다. 단 몇 주지만 현대 한국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서, 내 가족, 내 유산을 더 친밀하게 느꼈고 내 정체성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으며 한국계 디아스포라 경험을 기록하여 퍼트리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특별히 부천 레지던시가 디아스포라 문학에 주목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이었고, 이런 관심은 드물기 때문에 나와 같은 작가에게는 더욱 소중하다고 할 수 있겠다. 부천은 매년 디아스포라 문학상을 통해 한국 작가와 번역가에게 조명을 비추는데 올해 수상작은 이민진 작가의 (내가 개인적으로도 애착을 갖는 작품인) <파칭코>로 이 작품을 우리말로 옮긴 신승미 번역가와 이미정 번역가에게 상이 수여되었다. 이러한 행사는 디아스포라 소설, 특히 한국 디아스포라 문학의 발전에 매우 유의미한 역할을 한다. 과거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주변부의 이야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디아스포라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는 부천 레지던시는 전 세계 출판계의 변화까지 이끌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 동안 전문적인 훈련을 받고 기량을 닦아온 분야는 클래식 음악과 창의적 글쓰기다. 나는 한국 역사와 전통 음악을 이해하고 싶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신세계에서 서구 문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한국인의 서양 클래식 음악을 향한 동경과 뛰어난 역량이 식민지 역사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탐구하고 싶다. 또한 한국 문화 특유의 완벽주의와 치열한 경쟁심이 상대적인 박탈감과 어떻게 결합해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계층 상승을 연결하는 공식을 만들어 냈는지에 늘 관심이 많았다.

    줄리어드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콘서트 바이올리니스트로 지난 30여년간 공연 하고 후진을 양성해왔고 이제는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번에 한국의 디아스포라 작가이자 음악가, 교육자로서 부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내 부모의 고향을 발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은 내 작품의 방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타지에서의 문화 탐색이 가능은 하지만 한계가 있으며 이번 기회에 한국의 언어, 역사, 음악을 가까이에서 접하면서 시야를 넓히고 나의 글에 진정성을 더할 수 있었다.

    또한 부천이 자랑하는 문학적 토양인 도서관 연계 시스템에도 감동했다. 박주현 교수님과 노지양 번역가가 이끄는 워크샵에서 총명하고 신중한 가톨릭 대학교 학생들이 내 에세이 한 작품을 번역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무척 운이 좋다고 느꼈다. 아름다운 별마루 도서관에서 우리는 번역의 기쁨과 어려움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나누었고, 이때 오간 이야기는 나의 작품에도 중요한 통찰을 가져다주었다. 자꾸만 나의 이해를 벗어나는 언어, 코드 스위칭(code-switching 말하는 동안 언어나 말투 바꾸기), 번역은 내 글에 중심 주제이기도 하다. 이곳 한국에서 만난 많은 작가와 전문가들은 어려운 도전을 감사히 받아들여 일상적으로 멋진 결과를 만들어냈고 한국 문화, 언어, 사고를 세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며 지배적인 문화 안에서의 변화도 이끌어냈다. 이는 문화 교차 이해와 세계적 공감대 형성에도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 경험에 동반되는, 언제나 부유하는 떠돌이 같은 느낌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아마 그건 불가능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왔던 경험은 내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단서를 제공해주었다. 잃어버렸던 퍼즐 조각이 다시 내 손에 들어온 느낌, 어두웠던 방에 불이 살짝 켜진 느낌이었다. 어쩌면 가장 큰 발견은 온전한 나를 찾는다는 것은 나를 어떤 카테고리에 넣어 깔끔하게 분류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었다. 그보다는 현재 나라는 사람,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미분음 음악(微分音 반음으로 나눈 평균율보다 더 작은 음으로 나눈 음계를 사용하는 음악)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은 것일지도 모른다. 문화적 정체성에 상관 없이 모든 인간은 이따금 외로움을 느끼고 실존적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부천 디아스포라 문학상의 상징인 민들레 홀씨처럼 부천 레지던시는 어딘가에 속하고 싶은 우리의 보편적인 욕구를 인정하고 확장 시켜 주었다. 진실로, “우리 모두는 디아스포라다.”

    나의 언어와 음악을 당신의 땅에 흩뿌리고 올 수 있게 해준 부천시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이곳에서 꽃을 피운 그 작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관련 링크: https://blog.naver.com/bucheon_unesco/22301044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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