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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랑스런 복사골부천 시민기자다!
정선주 복사골부천 시민기자  |  wjd7111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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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28  21: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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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0월 복사골부천 시민기자 관외 현장 견학 모습  
    ▲ 2019년 10월 복사골부천 시민기자 관외 현장 견학 모습

    필자는 2006년 5월 8일 7기 복사골부천 ‘주부명예기자’로 위촉되었다. 필자가 위촉받던 당시는 ‘시민기자’가 아니라 ‘주부명예기자’라는 명칭이었다. 말 그대로 주부인 여성들이 부천시의 행정에 관심을 갖고 지역주민들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취재하면서 미담 발굴까지 하는 일이었다. 치열한(?) 경쟁률이었다고 들었다. 7기 7명의 주부명예기자들이 선발되었고 당시 홍건표 시장에게 직접 위촉장을 받았다.
    위촉된 날, 첫 회의에서 지금은 퇴직한 박경필 팀장의 당부가 있었고, 필자는 아직도 그 당부를 기억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일을 시작하셨다면 다른 일을 하시는 게 낫다. 큰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또한, 부천시 행정을 비판하고 시정(是正)하는 일을 하고 싶다면 다른 언론사로 가시라. 부천시에서 발행하는 관보인 ‘복사골부천’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 복사골부천 축쇄판에 실린 필자의 기사 모습을 찾아보았다. 축쇄판도 흑백에서 컬러로 바뀔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 복사골부천 축쇄판에 실린 필자의 기사 모습을 찾아보았다. 축쇄판도 흑백에서 컬러로 바뀔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40~60대 선배들 20여 명 있던 기존의 기자단에 유일한 30대로 막내로 필자의 주부명예기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매달 2번 기자단의 회의가 오전, 오후로 열렸다. 기사와 관련된 안건을 나누고 부천시에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얻고 선배들 낯을 익히는 자리였다. 필자도 그때 일을 하고 있었기에 한 달 2번의 회의 참석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선배들은 놀라운 회의 참석율을 보였다(대부분이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빠지면 무슨 일로 빠졌는지 다 알고 있을 정도였다.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새내기 기자에게 쟁쟁한 선배 기자들의 노련한 기사와 시정(市政)에 관한 놀라운 지식은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부러움과 두려움이라는 양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 2007년 4월 4일 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복사골부천 주부명예기자 모습(사진 출처: 조선일보)과 복사골부천 시민기자단의 2019년 5월 부천아트벙커 B39 현장견학 모습(사진 출처: 다음 카페, 부천시민기자단)  
    ▲ 2007년 4월 4일 조선일보 기사에 실린 복사골부천 주부명예기자 모습(사진 출처: 조선일보)과 복사골부천 시민기자단의 2019년 5월 부천아트벙커 B39 현장견학 모습(사진 출처: 다음 카페, 부천시민기자단)

    그때부터 16년 2개월이 지났다. 명칭도 ‘주부명예기자에서 시민기자’로 달라졌지만, 필자는 여전히 부천의 기사를 쓰는 ‘기자’이다. 뭘 써야 할지 몰라 고민만 하던 시절도 있었고, 서툰 글을 썼을 때 다른 기자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글은 조금씩 썼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자단의 내외부의 압력과 ‘기자’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싶은 욕심에 뭐라도 써야 했다.

    2012년 필자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 필자는 진심으로 이 ‘기자’라는 직위로 지내온 시절에 감사했다. 대학원생들의 일상이 글쓰기였으며, 박사학위의 최종 과정도 ‘학위 논문’이었다. 뭐라도 써야 하는 압박감에 썼던 기사들을 통해서 나도 모르게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사실을 다루는 방법을, 그 속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익혀 왔던 것이다. 그 덕분에 남들보다 빠르게 학위를 땄고 현재는 내가 전공한 분야에서 활발히 전문 활동을 하고 있다.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었지만 ‘시민기자’라는 직위는 필자의 글투를 만들어 가고 성장을 도운 것이었다.

    필자는 지금도 한 달에 3편의 글을 쓴다. 10여 년을 이어온 습관이다. 다문화와 관련된 부분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개인적 사명감이기도 하고 글 감(感)을 잃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필자는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이주노동자 등에 관련된 글을 자주 쓴다.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인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내 개인 블로그나 SNS에 올리는 것보다는 부천시라는 큰 채널을 통해 알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믿기 때문이다.

    지난 16년 2개월의 시간을 돌아본다. 이 타이틀로 부천시 곳곳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없이 반복되어온 과정이지만 난 ‘복사골부천 시민기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한국 사회의 소수자들에 관련된 내용을 내가 기획해서 취재하고 글로 담는 이 과정 자체도 보람됐지만, 이 자체가 모이면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 자료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7일 새로운 시민기자 3명이 선발되었다. 새 시대에 새로운 인물이 몰고 오는 또 다른 바람을 기대한다. 그들의 신(新)바람이 선한 영향력으로 이 기자단에, 부천의 곳곳에 불어주길 바란다. 찐으로 꼰대이고 싶지 않은 선배 기자의 진심 어린 바람이다.

      ▲ 2011년 9월에 발행된 복사골부천의 모습과 이번 달 발행된 복사골부천의 모습. 복사골부천의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 2011년 9월에 발행된 복사골부천의 모습과 이번 달 발행된 복사골부천의 모습. 복사골부천의 어제와 오늘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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