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에 살았던 골목인데 참 낯설다. 새로 지어진 5층 건물들이 팰리스, 데시앙, 그랑빌, 캐슬, 빌리지, 제니스라는 이름으로, 길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으로 빌딩 숲처럼 버티고 서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싶어 건물들을 기웃대며 신혼살림을 꾸렸던 전셋집을 찾아보았다. 내가 살았던 그 집만 건물들 사이에 홀로 버티고 있다. 남향의 2층집은 내가 살던 때보다 벽이며 창이 깨끗하게 색칠해져 관리가 잘 되어 보이지만, 내부는 날림으로 지어져 무척 추웠던 집으로 기억한다. 내가 1989년 10월에 결혼하여 3년을 살았던 집, 양귀자가 살았던 무궁화 연립과는 불과 20여 미터 직선거리다.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작가가 무궁화연립에 10여 년 가까이 살며, 2년여 동안 연작을 탄생시켰다. 1987년 10월에 발표되었고, 양귀자는 1990년 10월경 서울로 이사한 것으로 보아 아마 1년 정도는 원미시장을 같이 다녔고, 같은 골목에 살았을 텐데, 그때는《원미동 사람들》이라는 작품도 양귀자라는 작가도 듣지 못했다. 그것은 시골처럼 온 동네에 소문이 퍼지지 않고 관계에 따른 정보가 없어서일 것이다.

나는 시골에서 결혼 전까지 26년을 살다가 처음으로 도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연고지나 지인조차 없는 원미동 생활이 얼마나 답답했던지 모른다. 대낮에도 집집마다 대문을 걸어 잠가놓은 것을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넓은 들판을 뛰놀던 송아지를 코 뚫어 묶어 놓은 심정이었다. 내가 뛰놀던 논두렁, 밭두렁, 뒷산을 못 잊을 때면 쪽창을 통해 원미동을 내려다보곤 했다. 낮은 지붕이 빽빽하게 보이고 잠시 창을 열면 자동차 소리가 ‘웅웅’ 들렸다. 그래도 버스에서 내려 시청(구) 담장을 끼고 돌아 오다 보면 ‘부천의 중심지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졌다.

부천역에서 춘의 사거리까지 대로변은 중동신도시 탄생 전 부천의 중심이자 부천역으로 통하는 번화한 거리였다. 부천의 모든 버스 노선은 부천역을 경유했고 부천역은 외부로 통하는 부천의 관문 같은 역할을 했다.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던 때였으니 언제나 그 길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분주했다.

온종일 집에 있어 답답하거나 무료할 때면 저녁때 바람을 쐬기 위해, 특별히 살 것 없어도 원미시장 구경을 나섰다. 시장 입구 쪽에 2층짜리 무슨 연립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궁화 연립이었던 것으로 희미하게 기억된다. 시장으로 가는 길은 두어 군데 있는데 무궁화 연립길은 지름길이 아니어서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그 연립이 작품의 탄생지이고, 작품을 읽는 사람들에게 부천을 알리게 될 줄이야. 무궁화 연립에서 세탁소는 골목 맞은편으로 내려다보이니, 작가는 드나드는 사람들의 일상을 꿰었을 것이다. 세탁소에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사랑방처럼 수시로 드나든 것 같다. 양귀자는 세탁소 풍경을 소설 속에 잘도 그려 넣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작은 이야기들, 숨은 그림자, 얼마나 상상하면서 작품화 했을까. 그 세탁소도 주변에 신축건물이 들어서 초라해지긴 했으나 내가 살았던 전셋집과 같이, 그 모습 그대로 원미동의 터를 지키고 있었다. 그 옆에는 놀이터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무궁화 놀이터였다. 그네나 시소를 타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지금도 여전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걷기 좋아하고 호기심 많은 나는 이 건물 저 간판을 샅샅이 훑으며 다니는 것을 즐긴다. 슴슴하게 다시 걸어보는 원미시장은 그때와는 달리 한산하다. 80년대에 형성되었다는 원미시장은 그 당시 북적이던 시장에 비하여 지금은 몇몇 야채가게와 원미 찐빵, 원미 족발집만 분주할 따름이다. 그 탓인지 물건값이 다른 시장에 비해 좀 싸다고 귀띔한다. 중동신도시가 만들어지기 전 원미시장은 늘 사람들이 바글거렸고 생동감이 넘쳐났다. 그만큼 원미동에는 전국에서 굽이굽이 모여든 사람들이 이삿짐을 풀어놓은 곳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보지 않았던 나는 목청 큰 아줌마들로부터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의 억센 사투리가 신기하게 들렸다. 그래서인지 작가는 원미동을 ‘욕망의 실꾸러미로 짜여진 동네’라고 표현했다.

어느 날인가 싶다. 그날도 저녁나절 혼자서 시장에 다녀오는데, 대문을 나서던 주인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어디 갔다 와요?”

나는 습관적으로 “장에요.” 대답했다. “장”이라고 순박하게 표현한 나를 보고 웃었다. 그래도 그 인사가 반가웠다.

원미시장을 거닐다가 중간쯤에서 슬쩍 사잇길로 들어서 보았다. 옛 무궁화 연립을 닮은 2층 연립 두 동이 나왔다. 꼭 헐리기 직전의 건물 같아 보여, 무궁화 연립이 지어질 때쯤 건축되지 않았나 추측해보았다. 연립은 오랜 세월 터를 잡은 듯 사람 사는 온기가 확 느껴졌다. 노인들이 화분을 추녀 밑에 내놓고 꽃을 가꾸거나 추녀 밑 텃밭을 일궈 도시 농업을 하였다. 정성껏 가꿔 놓은 푸성귀들이 야들야들하게 봄볕을 쬐었다. 심지어 폐타이어 3개를 쌓아 놓고 나무를 심기도 했는데, 그 나무가 봄꽃을 화사하게 내밀어 오가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었다. 어디에서든지 봄을 맞이한 생명 있는 것들의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개발이 주는 편리함도 있지만 오래된 건물이나 터줏대감처럼 지켜온 사람들이 주는 또 다른 향기가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작품 속 지물포 점을 찾아보았다. 나로서는 추측만 할 뿐이다. 원미동 개발을 반대했던 ‘원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터에서는 그루터기에 새싹이 나오듯 원미동을 삶의 터전으로 일궈온 사람들의 숨결이 무늬로 남아 있다. 이 무늬를 간직한 채 원미동은 머무르고 있는 모습이다.

원미시장 끝 지점에 ‘사우 촌’을 둘러보자. 부천에서 줄곧 살았지만 나에게 ‘사우 촌’은 생소한 이름으로 들린다. 하지만 택시를 타고 “사우 촌 가주세요.” 하면 기사들은 잘 안다고 한다. 옛 동양방송 기자촌 사옥이다. 78년~83년 건축으로 추정되는 지붕이 뾰족한 단층 양옥집이다. 43채가 나란히 있어 ‘사우 촌’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고 한다. 지금은 7채만 남아 있다. 양귀자도 잠시 이곳 동양방송에 다녔다는 설이 있는데 확인할 수는 없다. 곧 한 채가 또 헐린다고 하니 작품 속 원미동 거리는 사라지고 머지않아 책 속의 원미동만 존재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아쉽게 한다.

부천에 올라와 내가 처음으로 살았던 원미동, 내게도 원미동은 나이테처럼 남아 있고 ‘멀고도 아름다운 동네’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