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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7  09:4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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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여름, 김은정(가명) 어르신은 춘의아파트에 이사를 오셨습니다. 원래 살던 곳을 벗어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신 김은정 어르신에게 춘의마을은 낯설고, 두려움의 도시였습니다. 정감 많은 옛 시장에서 슬슬 산책하며 이웃사촌들과 즐겁게 수다를 나누던 김은정 어르신이었지만 이곳에서는 10평 남짓한 방의 우두커니 앉아 있는 외로운 할머니가 되었고, 유일한 친구는 TV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김은정 어르신의 댁에 자주 방문하여 어르신을 보살피고 있던 큰딸 김지혜(가명)님은 복지관의 문을 두드립니다.

    “여기 혹시 독거노인들 밥 줄 수 있나요?”

    그리고 그렇게 복지관과 김은정 어르신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1. 김은정 어르신 가족의 이야기

    김은정 어르신은 어렸을 적에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탤런트 강부자가 내 친구야, 어렸을 때는 그 친구가 사는 게 어려워서 우리 집에서 많이 도와줬어, 쌀도 주고 반찬도 주고...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큰 집을 가지고 있었고, 동네 땅이 거의 다 우리 거였어.”

    유년시절에는 배고픈 어려움 없이 살아온 김은정 어르신이지만 결혼 이후에는 늘 배고팠습니다. 남편을 잘못 만나 도박, 술에 빠져 있는 남편을 대신하여 김은정 어르신은 3남매의 돌봄과 가정 생계를 책임졌고, 때문에 식당 보조, 가정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3남매를 키우기 위해 김은정 어르신은 늘 바쁜 일상에 놓여 있었고, 그럴 때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이는 큰딸 김지혜님 이었습니다. 바쁜 엄마를 대신하여 두 동생을 돌보던 청년 김지혜는 결혼을 하고 노인이 되었지만 다시 노인 김은정 어르신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서 김지혜님은 깊은 우울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내가 정말 어떻게 될 것만 같아요. 지금 남편도 중풍으로 쓰러져서 간호하고 있는데 엄마까지 챙기느라 너무 정신이 없고, 때론 혼자 있을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해져 있어요”

    김은정 어르신은 이런 김지혜님의 마음을 아시는지 입버릇처럼,

    “변변치 못한 애미라 해주는 것은 없고 받기만 해서 미안해”

    라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김은정 어르신은 춘의임대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에 막내딸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러나 김은정 어르신의 초기 치매 증상으로, 자꾸 음식을 찾고, 외출 후에 길을 잃어버리게 되자 막내딸과 갈등이 심화되었습니다. 결국, 가족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김은정 어르신과 막내딸은 서로 분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은정 어르신은 온전하지 못한 정신으로 막내딸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감을 가지고, 김은정 어르신의 춘의마을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2. 함께의 시작

    1) 김은정어르신과 함께

    저희와 처음 만난 김은정 어르신은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홀로 3남매를 키워 오신 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치매, 빈곤, 장애로 스스로의 모습은 감춰지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김은정 어르신께서 다시 예전의 강했던 모습을 되찾고, 강점을 발휘하실 수 있도록 함께하는 사례관리가 시작되었습니다.

    김은정 어르신의 강점을 회복하고 독립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가족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은 그저 큰딸은 미안한 존재, 작은딸은 섭섭한 존재, 아들은 무관심한 존재로 가족을 인식하고 있는 김은정 어르신에게 가족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고 과거에 김은정 어르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어르신과 함께 가계도를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어르신이 스스로 가계도를 그리며 가족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저희는 그런 이야기에서 어르신이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냈던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가계도 그리기를 마치고 난 뒤, 어르신은 저희에게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아서 마음이 후련하고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자꾸 깜박깜박하는데 이 그림(가계도) 보니까 우리 아이들하고 옛날에 함께 살던 때가 자꾸 생각이 나네, 오랜만에 아들이랑 작은딸에게 전화를 해 봐야겠어. 이제는 웃으면서 지내고 싶어.”

    2) 가족과 함께

    김지혜님은 경기도 시흥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시흥에서 김은정 어르신을 돌보기 위해 매일 택시로 이동하는 김지혜님에게는 뇌졸중으로 재활 치료를 받는 남편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남편과 어머니 2명을 케어하고 있는 김지혜님은 과거에는 동생들을 케어하는 것에 본인의 삶을 포기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본인 모습에서 자신의 이름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며 깊은 우울감을 표현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김지혜님에게 김은정 어르신에 대한 돌봄 책임을 완화해드리기 위해 어르신에게 식사 배달, 치매 관련 장기요양등급 재판정 등을 진행했습니다. 치매 관련 장기요양등급 재판정 이후에는 부여된 치매 관련 요양보호 서비스를 어르신에게 맞는 사람과 매칭하기 위해 김지혜님과 함께 서비스 제공기관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김지혜님을 대신하여 김은정 어르신과 함께 병원에 가고, 식사를 챙겨 주실 수 있는 좋은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김지혜님은 조금이나마 돌봄 부담을 내려놓고 김은정 어르신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김지혜님이 김은정 어르신의 돌봄 책임에서 벗어나는 만큼 김은정 어르신과 정서적으로 융합되지 않는 긍정적인 관계 만들기를 계획했습니다. 김은정 어르신을 여전히 돌봄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바라보던 김지혜님에게 어르신이 직접 그린 가계도를 보여 드렸고, 어르신과 나누었던 대화를 정리하여 보여 드렸습니다.

    “4년 전부터 엄마를 그저 챙겨야 하는 사람으로만 바라보았는데, 엄마가 저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는 몰랐어요. 엄마를 앞으로는 챙겨야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고민해 보고,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요”

    이날 이후 김지혜님은 사례관리과정에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어르신에게는 정서적 지지가 되어 주셨고 어르신께서 스스로 선택하기 어려운 일들에 대해서는 김지혜님은 어르신과 함께 상의하며 결정에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결정하였던 작은 경험들은 김지혜님과 김은정 어르신이 서로에 대한 미안함, 무거운 책임감을 내려놓고 여유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더 잘 보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춘의마을과 함께

    김은정 어르신은 과거에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나누는 것을 좋아하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오시면서 집에서 혼자 우두커니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깜박하는 것도 심해지며 우울감이 심화되기도 하였습니다. 저희와 처음 만나는 날에도 김은정 어르신은 사람이 그립다는 표현을 자주하시곤 하셨습니다. 이러한 김은정 어르신의 소원을 들어 드리기 위해 복지관에서 진행하는 ‘Musicall’ 활동에 어르신을 추천하였습니다.

    ‘Musicall’은 지역주민(마을활동가)을 중심으로 지역의 어르신들을 조직화하여 함께 삶을 나누고, 소통하며 관계를 이어주는 프로그램입니다.

    ‘Musicall’ 참여 초기, 김은정 어르신과 마을활동가의 1:1 라포 형성부터 진행되었습니다. 마을활동가께서는 특유의 활발함으로 낯선 환경에서 우울해 계시는 어르신의 마음을 위로하셨고, 어르신의 취향 저격 트로트를 매개로 소통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렇게 어르신과 마을활동가 간의 자연스러운 라포가 형성되었을 즈음 마침내 트로트를 좋아하는 중그룹 활동을 시작하면서 김은정 어르신은 지역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중그룹에서 만난 조수진(가명) 어르신은 김은정 어르신과 단짝이 되셨습니다. 만남 초기에는 두 분이 서로 병원에서 생활했던 이야기,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하셨습니다. 그리고 활동이 후반으로 접어들 때 즈음, 조수진님께서 건강이 너무 좋지 않다며 우울해하고 있었을 때 김은정 어르신은 평소에 두 분이 즐겨 부르던 트로트로 위로를 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Musicall’사업이 끝나고 마을활동가는 이제 만나기가 어렵지만, 김은정, 조수진 어르신은 서로의 집을 오가고,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김은정 어르신은 더 이상 10평 남짓한 방을 홀로 지키고 있는 외로운 어르신이 아니라 이웃 주민과 함께 본인의 삶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거주공간에서 생긴 이웃 친구는 김은정 어르신에게 든든한 지지자이자 김은정이라는 이름으로 온전하게 불릴 수 있는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선생님(마을활동가)이 없어서 너무 섭섭하지만, 0000호 할머니랑 많이 친해져서 너무 좋아. 여기 왔을 때 혼자 TV만 보며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 같았는데, 이제는 반찬도 나눌 사람도 있고, 딸도 날 보면 웃어주고, 아들도 전화해 주고 너무 즐거워.”

    #3. 이제는 김!은!정!

    이제 김은정 어르신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셨습니다. 부모님 품 안에서 유복했던 학생 김은정과, 남편을 원망하지만 자녀를 책임지기 위해 삶의 무게를 견뎌낸 청년 김은정에서 벗어나, 남은 삶 매일 속에서 감사 인사와 나눔으로 마을을 따듯하게 하는 지금의 김은정! 당신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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