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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날에
부천시청  |  peachisland@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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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16  10: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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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봄에 병이 다 나으면 아들을 만날 수 있겠죠?”
요즘 들어 할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치매노인과의 첫 만남

희끗희끗한 머리를 가리기위해 구슬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식사지원 서비스를 신청하기 위해 동생과 함께 복지관에 방문한 한씨 할머니는 올해 69세입니다. 치매를 앓게 되자 지난여름 동생의 권유로 원종동에 이사를 오셨고, 할머니는 점차 치매가 악화되어 식사나 약물복용도 혼자서는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집 안에서 문을 열지 못해 부동산 중개업자의 도움으로 겨우 밖으로 나왔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본인 스스로 식사를 해결하시려 주5일 지원받던 식사지원 서비스를 주2일 반찬지원 서비스로 변경하여 그날 외에는 직접 요리해서 드시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또한,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는 거지~” 라고 말씀하셨지만 할머니는 고혈압, 당뇨병 약부터 급성 장염과 심부전 등 많은 질병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꼬박꼬박 챙겨 드시는 등 포기하지 않고 이겨내려 노력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지관에서는 할머니를 돕고자 노인종합돌봄서비스를 신청하여 드리고, 정적인 활동을 원하시어 복지관의 청춘대학 프로그램을 안내해드렸습니다.


지난 삶의 회한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

할머니가 보고 싶어, 여느 날처럼 이른 저녁 할머니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거실의 불만 켜놓고 안방의 모든 불은 꺼놓은 채 할머니는 혼자 훌쩍이며 술을 마시고 계셨고, 어쩐 일이시냐는 물음에 “그냥 외로워서.. 사는 게 허무하네.” 라고 답하셨습니다.

그 날, 이런저런 얘기 끝에 할머니는 지금까지의 삶을 허심탄회하게 모두 말씀하셨습니다. 과거 남편과 5살 난 아들,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고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남편이 돌아가신 후, 도망치듯 혼자 몸으로 서울로 상경하여 의류사업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세신사 일을 하시면서 돈을 모아 빚을 전부 갚았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들을 두고 도망치듯 상경하여 화려하고 자유롭게 살았던 젊은 시절을 돌이켜 회상해보면, 후회되고 마음이 울적해져 한 잔씩 마시던 술이 점점 늘어간다고 하소연하였습니다.

“거기 복지관이죠? 우리 언니가 쓰러졌어요!”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의 생활관리사가 방문하기 하루 전, 여동생을 통해 급하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날 새벽부터 다음날 이른 아침까지 시댁에 두고 왔던 아들을 생각하면서 계속 술을 드셨고, 구토와 어지럼증 그리고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다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이내 알코올 전문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할머니를 만나 뵐 수 있었고, 환자복을 입고 계신 할머니는 얼굴이 핼쑥해지고 핏기가 없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두 손을 꼭 잡으며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할머니는 그간 외로움과 아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밤을 술로 지세우며 보냈고, 그러다 보니 술 없이는 제정신으로 버티기가 힘들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알코올의존증과 그로 인한 복수, 알코올성 간경변증, 심부전, 급성간염, 수면장애 등을 진단받아 본인 스스로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하셨지만 이내 한 달이 되지 않아 집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너무 힘들어... 거기 병동 사람들 텃세에 산책도 못나가게 하고 숨이 턱턱 막혀...”
폐쇄된 병동생활과 환자들 간의 갈등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동네 마실과 쇼핑을 좋아하셨던 할머니에게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제일 큰 고역이었습니다.


보고 싶던 아들의 연락, 그리고 만남을 위한 준비

퇴원이후 할머니 댁을 방문하니 그 날도 할머니는 불 꺼진 방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계셨습니다.
“사실 아들한테 연락이 왔어. 엄마가 보고 싶대... 근데 난 술병이 들어서... 못난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할머니는 폐쇄병동 생활이 어려운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아들을 만나기 위해 퇴원을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이내 지금의 못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차마 아들을 만날 용기를 내지 못하셨고, 또다시 혼자 술로 울적한 맘을 달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할머니와 함께 아들을 만나기 위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알코올 의존증을 완치해야만 떳떳이 아들을 볼 수 있었기에, 먼저 알코올중독 치료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MRI 찍어서 상태 검사하기, 알코올 전문병원에 입원해서 병원치료 잘 받기, 치료 후 건강해져서 아들 만나기 등 세 가지 목표를 세워 지키기로 할머니와 약속하였습니다.

최근 1년 간 치매가 급격히 진행됨에 따라 먼저 병원에서 MRI 검진을 위해 소액의료비 지원사업을 신청하였고, 지원금액 외 차액은 분할납부하기로 하였습니다. 이후 일주일간 입원 준비를 하여 알코올 전문병원에 자의로 입원을 하셨고, 병원의 도움으로 할머니가 원하는 병동에 입원하여 취미활동을 위한 그림그리기, 자수 프로그램도 이용할 수 있게 지원을 받았습니다.
침대 맡에는 여동생이 보내준 아들과 며느리, 초등학생 손주둘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붙여놓고 병 치료를 위한 의지를 다졌습니다.

할머니를 돕기 위해 민관협력 통합사례회의에서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아 음주의 이유, 음주에 대한 문제인식, 금주의 필요성, 문제해결을 위한 각오와 계획 등을 할머니와 같이 생각하고 향후 아들과의 만남을 위해 치료에 대한 의지를 높이도록 하였습니다.
“술은 위험해. 나빠. 술만 마시면 난 또 울거든. 그러니깐 앞으로 술은 쳐다도 안볼 거야. 집에 가면 약도 꼬박 챙겨먹고, 복지관에서 주는 밥도 남기지 않고 먹고, 예전에 하려고 했던 청춘대학에도 입학할거야... 머리도 깔끔하게 염색하고 옷도 예쁜 거 입고 아들이랑 손주들 보러갈 거야.”


따뜻한 봄날의 약속

요즘 할머니는 치매치료를 위해서 소액의료비 지원을 신청하여 진료일을 기다리고 있으며, 진료일이 정해지면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은 후 약도 꼬박 챙겨 드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매일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기며 그 많은 약들도 잊지 않고 드시기 위해 병원에서 챙겨주지만 알람까지 맞춰가며 약 먹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루 2번 산책 겸 운동을 하고 독서와 그림그리기, 자수도 틈틈이 하고 무엇보다도 같은 층의 병동 환자들과도 한번 씩은 안부인사를 하며 병원생활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봄에 병이 다 나으면 아들을 만날 수 있겠죠?”
최근 병원에서 할머니가 예상 외로 많이 좋아지셔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늦봄에 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할머니는 아들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한껏 들떠 계시고, 아들과 손주도 할머니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따뜻한 봄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안타까운 상황에 처한 이웃들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이웃들을 한 번만 돌아봐주세요. 관심을 가져주세요.
한씨 할머니처럼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많은 이웃들이 관심과 도움을 받고 봄날을 맞이할 수 있도록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원종종합사회복지관 장경진 사회복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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