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로 겨울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낄 무렵 복지관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머뭇거리며 상담을 받고 싶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며칠 뒤 용기 내 복지관에 발걸음 한 임지연(가명)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큰딸의 대학등록금과 입학금을 마련할 길이 없어요. 도와주세요~”
자활센터에서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근무하고 있는 임지연님은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의 자녀 세 명을 둔 어머니였습니다. 10년 전 남편과 이혼 후 홀로 자녀 세 명을 키우며 어렵게 생활하면서 한 번도 주변에 어떠한 도움을 받은 적 없지만, 최근 새로 이사 온 이웃의 권유로 주민센터에 차상위(한부모)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민센터를 통해 복지관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고, 첫째 자녀의 대학등록금과 입학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던 끝에 복지관에 방문하여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간의 가정사와 현재 상황에 대해 상담을 하던 중 그동안의 삶과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으로 임지연님은 하염없이 눈물을 보이셨고, 그 모습에 애잔함과 절실함이 느껴져 앞으로는 사회복지사가 함께 하며 도움을 드리기로 약속하였습니다.

임지연님과 첫 만남 이후 첫째 자녀인 하나(가명)와 만남을 가졌고, 하나는 수도권에 위치한 교육대학교와 명문대학교를 수시 1차에 합격하여 면접과 최종합격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매일 힘들게 일하는 엄마와 어린 동생들을 생각하며 공부에 열심히 매진하였다는 하나는, 올바르고 성실한 태도와 긍정적인 성격을 지닌 친구였습니다. 하나와의 만남 이후 이 가족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잘하는 일을 더 잘 할 수 있게 어떻게 돕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고 찾아보기 시작하였습니다.

연이은 도움의 손길

얼마 뒤, 부천희망재단에서 대학 진학을 앞 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등록금 지원사업의 신청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등록금이 필요한 것은 사례관리자가 아닌 본인이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 또한 본인이기에 하나에게 직접 신청서를 작성해볼 것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어 대학등록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고, 이후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교육대학교에 최종 합격하여 하나는 교사로서의 꿈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셋째 자녀인 승원(가명)이에게는 어린이재단 결연후원을 신청하여 매달 학원비로 사용할 수 있는 후원금을 연계하였고, 한국사회복지관협회의 난방비 지원사업을 신청하여 한파가 한창인 겨울을 네 가족이 따뜻하게 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렸습니다. 또한 복지관을 후원하는 기업에 첫째 자녀인 하나를 추천하여 일시 장학금을 지원해 학비부담을 덜어드리기도 하였습니다.

도움을 받던 수혜자에서, 재능기부자로의 변화

그러던 어느 날, 복지관 프로그램을 상시 이용하던 한 어머님께서 지적장애가 있는 본인의 손자 학습멘토를 복지관에 요청하셨습니다. 일반학원에 다닐 형편이나 상황이 되지 않아 혹시라도 복지관에서 개별 학습지원이 가능한지 꼭 좀 알아봐달라는 말에 불현듯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에게 복지관 학습멘토 봉사활동을 제의했더니, 교사가 장래희망인 만큼 누군가를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에 흥미가 있고 평소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았다며 선뜻 응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본인이 받은 만큼 보답하고 싶다는 하나는 1주일에 한 번씩 복지관을 찾아와 개별 학습멘토 활동으로 재능기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어느덧 재능기부 봉사를 한지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두 사람의 사이는 무척 가까워졌고, 서로가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며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희망찬 내일을 향한 도약

많은 것들이 변화한 지금 임지연님은 작년 가을을 떠올리며 만약 그때 새로 이사 온 이웃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주민센터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복지관에 연락해보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를 것 같다며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지역사회가 보여준 따뜻함과 이웃사랑에 대한 실천으로 본인 가족들 역시 주변 이웃을 사랑하고 지역사회를 돕기로 다짐했다고 합니다.

장애인활동보조인으로 일하며 몸소 봉사와 복지를 실천하고 있는 임지연님, 재능기부로 정기적으로 복지관 학습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첫째 자녀 하나,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학업에 임하고 있는 두 자녀들. 이제 더 이상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대상이 아닌 지역사회에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하기 위해 각자 맡은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임지연님 가정은 오늘도 훈훈한 온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라종합사회복지관 안은빈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