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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최선을 다하면 기회는 온다'부천FC 미드필더 23번 이순석
김덕영 시민기자(블로그)  |  kabbalah10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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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09  08: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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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FC 23번 미드필더 이순석(23세)은 지난해 팀의 주전 공격수였다. 25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넣는 팀의 에이스였다. 2012년 시즌 전반기 마지막 게임 중량코러스와의 경기에서 헤트트릭(3골)을 성공한 장본인이다. 매 경기 때마다 활약했던 그의 모습은 부천FC가 챌린지 리그로 승격되면서 볼 수 없었다. 

    7월 시즌 전반기까지 교체로 한번 출전했던 것이 전부이다. 한 살 차이 형들과 동료들이 주전 자리를 뛰고 있을 때 이순석은 기다렸다. 한손엔 책과 양발엔 축구공을 끼고서였다. 간절한 시간 속에 경찰축구단과의 경기에서 전 후반 풀타임을 뛰었다. 이 날이 오기까지 마음고생을 누구에게도 말 한 적 없다. 

    성남일화에서 부천FC에 오기까지 프로리그에서 냉정함을 맛본 그의 이야기를 함께한다.

    차범근축구교실에서 성남일화로

    초등학교 1학년 이순석은 아버지(이경진? 51세)의 손을 잡고 차범근축구교실로 갔다. “아버지는 축구선수가 꿈이었다. 할머니의 반대로 꿈을 펼치지 못했다.” 축구공과 친해질 수 밖에 없었던 환경. 이렇게 이순석은 축구공과 첫 인사를 나눴다. 

    차범근축구교실에서 배출된 유망주들은 흔히 신용산초, 용강중, 여의도고를 거친다. 예외없이 이순석도 이 라인을 밟았다. 이 학교들은 그 흔한 합숙도 없이 학업과 훈련을 병행 한다. 운동 만큼 공부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곳에서는 훈련시간도 정규수업시간 이후로 정해져있다. 그래서 이 세 학교는 한국 유소년 축구계의 혁신적인 곳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이순석과 곽경근 감독은 여의도고등학교에서 선수와 수장으로 만났다. 당시 주전으로 뛴 이순석은 팀의준우승을 이끌만큼 활약했다. “고등학교 때는 감독님이 직접 선수들과 뛰면서 많이 가르쳐 주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이순석에게 곽경근 감독은 “성인무대를 빨리 경험해보고 직접 부딪혀 보아라.”는 조언을 했다.

    졸업을 앞두고 프로리그에 드래프트를 넣었다. 2010년 성남일화에서 번외지명으로 이순석을 뽑았다. 당시 성남일화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이순석에게 성남일화 시절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게임을 안 뛰는 2군 선수에게는 더 많은 훈련시간이 주어졌다. 새벽부터 코칭스텝에게 신문 돌리기, 선배들 빨래하기, 간식 배달하기 등 훈련일정 이외 업무도 있었다. “일을 하시던 분이 몸이 아파서 갑자기 그만두었다. 3개월 동안 팀 막내들이랑 도맡아 했다."

    고된 일상 이었지만 성남 유니폼을 입는 다는것에 그는 기뻤다. “고등학교 때 대학팀과의 연습경기는 긴장된 게임이었다. 성남에 오니 유니폼만 바뀌었을 뿐이었는데 자신감이 생겼다.” 자리가 자신감을 만들어 주었다. 2군 리그에서도 뛰는 횟수가 늘어났다. 하지만 2010년 시즌이 끝나갈 무렵 성남은 이순석과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다. 당시 이순석은 성실한 프로리그 데뷔 초년선수. 하지만 성실함 만으로는 감독에게 어필하기란 부족했다.

    두 번째 프로리그 도전 경남FC에서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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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잡함과 서운한 마음으로 다른 팀을 찾았다. 학창시절 은사 소개로 경남FC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경남에서는 이순석을 긍정적으로 보았다.

    '2011년 시즌부터 뛰어도 된다'는 구두계약이 있었다. 동계훈련도 참가했다. 정식선수입단 계약을 2주 앞둔 2월 중순. 연습경기 도중 부상을 당했다. ‘피로골절’ 오른쪽 새끼 발가락 뼈가 부러졌다. 2개월 정도 깁스를 했다. 축구선수의 가장 중요한 곳이 묶여 버렸다.

    “너무 힘들었다. 여태껏 축구만 하며 살아왔는데 막막했다. 좌절감, 실패감만 찾아왔다. 부모님도 꿈을 잃은 나를 보고 슬퍼하셨다. 깁스를 하고 다름 팀에 갈 수도 없었다. 폐인처럼 살았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있었지만 인생을 잘 산 건 아니다. 부모님 봐서도 안 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움 되는 것을 찾아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영어공부를 했고, 안 보던 책도 읽었다.”

    2011년 시즌 하반기. 경남으로부터 미드필더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구단을 찾아가기 위한 기차표를 티켓팅 했다. 출발 이틀 전 구단에서 전화가 왔다. “하반기 신인선수 보강이 전면 백지화 됐다. 오지마라” 2011년 프로축구계를 뒤흔든 승부조작 사건이 경남FC에도 덮쳤다. 이로 인해 경남은 신인선수를 뽑지 않았다. 물론 이순석도 제외됐다. 실망감과 좌절감에 이순석은 축구화를 벗었다. 그리고 다시는 신지 않을것이라고 단념했다.

    매 학기 장학생..4.5만점의 비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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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석은 현재 강남대학교(경기도 용인시)사회체육과 2학년 휴학 중이다. 부천FC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 생활은 잠시 보류했다. 강남대학교는 축구부가 없다. 2011년, 공부의 필요성을 느꼈고 축구특기생으로 지원했다. 경남에 입단하지 못했고, 평범한 대학생들처럼 똑같이 생활했다. 2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2학년 1학기에는 올 에이플러스로 4.5만점의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이순석은 “축구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언제까지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 어떤 직업을 갖건 공부하는 습관을 놓으면 기회가 와도 잡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축구를 한번 놓아보았기에 공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라며 유소년 축구선수들에게 공부를 포기하지 않기를에게 당부했다.

    챌린저스리그 시절부터 같이 뛰고 있는 팀 동료 안영진은 “순석이는 공부하러 커피숍에 간다. 책도 많이 읽고 좋은 책은 빌려주기도 한다.” 이순석은 일주일에 2∼3권, 한 달에 8권정도의 책을 읽는다.

    밤 10시 외국인과 전화 프리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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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에 3번, 밤 10시만 되면 이순석은 외국인과 통화를 한다. 전화영어 공부시간이다 “영어공부는 하고 싶은데 과외나 학원 생활은 힘들다. 회화를 배우고 싶어서 시작했다.” .

    이 모습에 같은 팀 동료들은 ‘허∼걱’하고 놀란다. “순석이 영어로 말해”하며 대단해 한다. “간단한 대화 수준이다. 잘하는 건 아니다.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 필요해서 꾸준히 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이다.

    이순석은 지난 7월 중순 부천남중학교(부천시 소사구 송내동)에서 강연을 했다. 축구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축구선수와 꿈’이란 주제로 45분 강의를 했다. 직접 파워포인트로 자료를 만들었다. 대학시절 발표수업마다 프리젠테이션을 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부천FC 팀 창단 배경과 축구선수 꿈을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 것인가란 내용을 전달했다. 마지막에는 부천FC경기 보러 꼭 오세요란 말도 잊지 않았다.

    부천FC필드에서 다시 신은 축구화

    2012년, 고등학교 은사 곽경근 감독에게 전화가 왔다. “부천FC로 와서 다시 축구해라” 축구화를 다시 신을 수 있는 기회였다. “솔직히 망설였다. 공부에 한참 재미를 붙인 시기였고, 축구와 동떨어진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영어공부와 다른 자격증도 준비 중이었다.”

    당시 팀은 챌린저스리그였다. 곽 감독은 “학교 다니면서 할 수 있다. 일주일에 3번만 나와라. 경기는 주말에만 있다.” 이 말에 희망을 안고 내가 좋아하는 축구화를 다시 신었다.

    집은 서울시 노원구, 학교는 경기도 용인시, 팀은 부천이었다. 매일 아침 등교를 시작으로 하루에 운전대를 잡는 시간은 총 4시간30분 정도였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부천에 가서 축구를 했다. 그리고 자정이 다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몸은 힘들고 피곤했는데 행복했다. 지금까지 가장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이 바로 그때다.” 팀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뛰었고 다시 찾아온 기회가 감사하기만 했다. 서포터즈가 응원해주는 경기장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응원소리가 신기하기만 했다.

    시즌 하반기. 팀이 상위 프로리그으로 승격될 수 있다는 희망이 전해졌다. 흥분됐고 간절한 마음으로 부천FC창단 조례안이 통과되기를 기다렸다. '조례안이 통과 안 되면 팀이 해체 된다’는 불길한 소문도 무성했다. 첫 번째 본 회의에서 부결되자 헤르메스들은 울음을 터트렸다. 이순석도 같은 마음이었다. 겉으론 애써 담담한 척 했지만 마음 속으로는 펑펑 울고 있었다. 이 과정을 함께해준 서포터즈 헤르매스. 애정이 클 수밖에 없다. “프로까지 올 수 있게 한 것은 헤르메스다.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어디 가서 프로 명함을 내밀고 축구를 할 수 있었겠냐. 나의 꿈을 만들어주고 이루어 준 존재이다.”

    전폭적인 지지자 나의 부모님

    이순석 선수의 가족은 가족은 ‘축구 삼부자’이다. 동생(이순민, 20세)도 영남대학교 예비축구부선수이다. 내년 입학예정으로 이 학교에서 훈련 중이다.  아버지 이경민씨의 축구사랑과 열정이 축구선수인 두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순석의 기본기에는 아버지의 남다른 훈련법이 녹아 있다. “아버지는 축구에 대해 잘 아시고 항상 공부하셨다. 초,중,고 시절 저녁마다 차범근축구교실에 가서 삼부자가 운동을 했다. 아버지가 체계적으로 훈련을 시키고 도움을 주셨다.” 경기가 끝나면 경기분석도 꼭 따라왔다.

    2002년 히딩크 감독이 국가대표팀 훈련에 시킨 체력 훈련 ‘셔틀런’ 프로그램을 형제에게 시켰다. 아버지는 훈련시간마다 “몇 개 이상 못 뛰면 열심 히 안한 것이다. 몇 개 이상 뛰어야 한다.” 팀 훈련보다 힘든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훈련 프로그램을 따라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가는 게 보였다. 아버지의 전폭적인지지 어머니의 끝없는 믿음 그리고 같이 훈련 할 수 있는 동생은 이순석에게 큰 버팀목이다.

    프로골퍼 출신 여자친구

    이순석에게는 교제한지 3년 된 여자 친구가 있다. 프로골프선수 출신인 그녀는 이순석이 부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옆에서 지켜주었다.

    “나에게 너무도 고마운 존재이다. 내가 프로팀에 있다고 모든 일정을 나에게 맞춰 준다.” 이순석을 우선으로 놓는 것을 당연히 생각한다.

    “포도즙, 비타민, 과일 등 모든 간식과 먹거리를 챙겨준다. 더 잘해주고 싶고 그 만큼 더 해주고 싶다.” 같은 운동선수 출신이기에 그의 고민 상담과 조언 역할도 돕고 있다. 지난해에는 매 경기 뛰는 모습을 보러 경기장에 자주 왔다. 올해는 올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이번 경찰전 경기에서 뛰는 모습을 응원하기 위해 오랜만에 경기장을 찾은 그녀이다.

    멀티플레이어 선수 이순석, 어떤 자리는 중요치 않다.

    이순석의 현재 포지션은 미드필더다. 지난해에는 공격수로 뛰었다. 부천 팬들은 이번경기에서 그의 모습을 보고 “원래 저 자리 아닌데”라며 의아해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비, 공격 다 뛰었다. 어느 자리에서든 뛸 수 있다는 것을 감독님이 잘 알고 계신다.” 경기만 들어갈 수 있다면 자리는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감독님이 세워준 자리에서 열심히 뛰자. 나한테 맡겨진 임무 그것만 집중하자. 다른 거 신경 쓰지 말자”고 주문을 건다. 풀타임을 뛴 경찰청 경기가 끝나고 이순석은 이렇게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기회였다. 너무 얼떨떨했고 경기가 끝나고도 그 떨림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크게 잘 한 것도 없는데 헤르메스가 응원해주고 이름을 외쳐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감사합니다, 헤르메스 ” 

    “헤르메스는 국내 최고의 서포터즈이다. 열 명이 오던 백 명이 오던 뜨겁게 응원해준다.”

    이순석은 헤르메스 중 맨 앞자리에서 응원하는 중고생 서포터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꼭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들은 매 경기마다 따라와서 응원해주고 너무 열렬히 환호해준다. 경기에 안 나가면 잊혀지기 마련인데 나오든 안 나오든 항상 지지해준다.”고 설명했다. 한번은 경기에 안 들어가고 후보 선수 명단에만 들어있어서 몸만 푼 적이 있다. “이날 경기가 끝나고 버스 타러 가는 데 내가 결승골 넣은 것처럼 응원 해주었다.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경기장에서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내가 뛸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고 전했다. “누구보다 환호해주고 기뻐해준다. 연패 할 때 도 아낌없이 응원해주고 격려 해주는 서포터이다. 안일한 마음일 때 충고 해주는 헤르메스는 서포터 이상의 존재이다. 부천 마크를 달고 나가면 응원해주는 서포터여서 감사 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보답을 꼭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축구지도자가 되고 싶다

    축구선수로서 꿈은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것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목표이다. 먼 훗날 축구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홍명보 감독처럼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다.” 축구선진국 영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다. 선수생활이 끝나면 외국에서 학교를 다닐 예정이다. “영국은 축구관련 학과가 많다. 기회가 되면 꼭 도전하고 싶다” 영어공부에 매진하는 이유도 미래에 찾아올 기회를 위해서이다.

    “경기에 안 뛰면 그만큼 운동량을 채워야 한다.”며 엔트리에 들지 못한 시절 개인훈련으로 기다림의 시간이 많았다.

    이순석에게도 주전 확보 욕심은 항상 있었다. 열심히 하지 않으면 프로에서 못 버틴다는 현실을 20살 나이에 일찍 깨달았다. 다음 경기에 엔트리에 못 들면 어떻겠냐는 질문에 “누가 보던 안 보던 꾸준히 묵묵히 하면 기회는 주어질 것이다.” 간단한 대답에 다음 걱정은 필요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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