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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메스 캐슬’ 볼 보이, 프로선수 되다.부천FC 24번 안영진 “내 고향에서 뛰고 싶다.”
김덕영 시민기자(블로그)  |  kabbalah10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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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1  22: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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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FC 수비수 안영진(26세). 그는 기억한다. 2001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관중의 함성 소리가 아직도 귓가를 울린다. 서울 목동구장에서 부천으로 홈 구장을 이전한 부천SK 개막전에서 그는 볼 보이였다. 3만5천여 관중석이 가득 채워진 경기장에서 중학생 볼보이 안영진은 떨고 있었다. 많은 관중들 앞에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 공을 놓칠까봐… 출전선수도 아니었던 그는 그날의 긴장했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다.
     
    과거 부천의 볼 보이였던 안영진은 지금은 부천FC소속 프로선수이다. 부상으로 엔트리에 들지 못하고 출전 할 수 없지만 ‘내 고장 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의 축구인생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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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부천! 내 고향 부천
     
    안영진의 고향은 부천이다. 1988년 오정구 고강동 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느 곳이나 발 만 닿으면 무조건 뛰는 아이였다. 뛰던 아이는 집 근처 고강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육상부로 들어갔다. 초등학교 4학년, 육상대회에 나간 안영진. 그의 모습이 계남초등학교 축구부 감독 눈에 뛰었다. 계남초는 이 당시 축구부 창단을 앞두고 선수 물색 중이었다.
     
    고강동에서 축구부가 있는 계남초등학교(원미구 중동)까지 갈려면 버스를 두 번 갈아타야 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 영진이 멀리 있는 학교를 다니는 게 안쓰러웠다. 아들이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겠다고 나서니 걱정이 앞섰다.
     
    어린 영진은 부모 몰래 감독에게 얻어먹던 ‘자장면’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다. 새벽운동에도 빠짐없이 버스를 두 번 바꿔 타며 축구부로 향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부모님의 반대는 꺽였다. 안영진은 계남초등학교 축구부 창단멤버로 뛰었다.
     
    빨간 유니폼 부러워한 볼 보이
     
    계남초 축구부를 졸업한 그는 중학교 축구부가 유일하게 있던 역곡중학교에 입학했다. 축구부에서 공격수를 맡은 안영진은 볼보이 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지금은 한 솥밥 생활을 하는 곽경근 감독과 윤정춘 코치 등 프로 선수들의 모습을 누구 보다 가까이 볼 수 있어서였다. 부천 경기가 있는 날이면 역곡중 감독은 안영진에게 “곽경근 선수의 플레이를 눈여겨 잘 보아라. 너와 같은 포지션이고 스타일도 비슷하다. 잘 보고 배워라”고 말했다. 안영진은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누구보다 곽 감독의 모습을 눈과 가슴에 담았다. 그리고 곽 감독은 안영진의 롤 모델이 되었다.
     
    부천SK와 포항스틸러스의 홈 경기 날. 곽경근 감독이 포항 용병선수의 팔꿈치에 맞아서 눈이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그의 눈 주위는 피로 물들었고 들것에 실린 곽 감독을 안영진은 보조가 되어 경기장 밖으로 날랐다.
     
    볼보이 안영진은 이때부터 빨간 유니폼 입은 선수가 꿈이 되었다. 곽경근 선수가 롤 모델이었다. 그와 같은 내 고향 부천 유니폼을 입은 프로 선수가 되고 싶었다.
     
    지금은 과거의 추억처럼 이야기했지만 “존경하는 선수가 곽경근 감독님이었다는 것 아실까요?”라고 말하는 안영진의 눈은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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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부천FC제공
     
     
    득점상, 도움상은 울산에서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울산현대 구단 스카우터가 안영진을 찾아왔다. 울산현대 유스팀 울산 ‘현대고등학교’축구부로 오라는 제의였다. 안영진은 주저하지 않고 울산으로 내려갔다.
     
    정규수업이 끝나면 울산현대 클럽하우스에서 훈련을 했다. 프로구단의 형들이 주는 축구화를 최고의 선물로 기뻐하며 고등학교 시절 전성기를 만났다. 전국에서 잘한다는 동료들이 모인 축구부에서 치열한 경쟁, 그 안에서 열심히 했던 기억밖에 없다. 결국 주장이었던 고등학교 3학년 ‘2006년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상’을 받는 등 공격수로 자리매김했다.
     
    대학진학 시기가 다가오자 서울에 있는 대학 축구부에서 오라는 제의를 받았다. 안영진은 그를 키워준 울산에서 ‘가까이 지켜보고 싶다’는 구단 관계자의 말을 믿고 울산대학교로 진학했다. 울산대학시절 지금은 전북현대에서 뛰고 있는 이승기와 투톱을 이루며 ‘2010년 7월 전국대학 축구대회’에서 도움상을 받았다.
     
    클래식에서 내셔날리그로
     
    울산고와 울산대학교를 이어지는 생활에 안영진의 프로생활 시작은 울산현대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게 바뀌기 시작했다. 그가 4학년이 되자 대학 축구부감독과 울산 구단 관계자들이 물갈이 되었다. 그를 데려온 스카우터도, 대학연습경기 때 봤던 울산감독도 모두 바뀌었다. 결국 그해 울산은 우선지명을 철회했다. 안영진을 뽑지 않았다.
     
    믿고 기대했던 구단에서 그를 데려가지 않은 이 때가 그의 첫 시련이었다. 갈 곳 없는 안영진에게 대학 감독은 내셔날리그로 갈 것을 권했다. 안영진은 그동안 꿈꿔왔던 프로무대를 버릴 수 없었던 그는 드래프트 번외지명으로 받아준 경남FC에서 뛸 수 있었다.그곳에서 만난 감독은 안영진의 고등학교 축구부 코치 친 형이었던 최진한 감독이었다. 그를 알고 있던 최진한 감독은 안영진을 따로 불러 “마음 껏 해 보아라”라며 다독여 주었다.
     
    그동안 꿈꿔왔던 프로구단에 입성한 안영진은 기라성 같은 선배와 체격 좋은 용병들 앞에 서니 위축됐다. 자신이 없었다. 위축된 그는 자신의 포지션을수비수로 자리를 바꿔달라고 팀에 요구했다.
     
    수비수로의 전환은 쉽지 않았다. 최 감독의 사적으로는 안영진을 아꼈지만 팀에서 그의 자리는 쉽게 나지 않았다. 수비수로 참여한 그해 겨울의 동계훈련도 따라가지 못했다. 공격수를 포기한 것을 후회 했다.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자리가 없는 프로구단의 냉정함을 안영진은 다시 한 번 느꼈다.
     
    “지금 같은 상황이었다면 절대 공격수 자리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생각이 짧았다”라고 말했다.
     
    경남에서 자리를 못 찾던 그를 창원시청에서 임대했다. 창원시청 감독은 울산대와의 연습경기에서 안영진의 공격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고 그를 팀에서 쓰고 싶어 했다. 안영진도 필드에서 뛰고 싶다는 마음으로 창원시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곳에서 그의 포지션은  주전공격수였다. 입단한 그해 창원시청은 내셔날리그 3위를 했다.
     
    그렇게 팀 성적도 좋고 주전으로 자리를 꿰찰 때 '족저근막염'이라는 부상이 찾아왔다. 발을 땅에 딛을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다. 결국 수술대에 누웠다. 회복 중인  그에게 창원시청은 회복하면 언제든지 다시 오라고 했지만 막상 회복 후에 가보니 그의 자리는 없었다. 세 번째 아픔이었다.
     
    ‘이제 축구인생은 끝이구나’라는 절망감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결국 안영진은 모든 걸 정리하고 고향인 부천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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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부천FC제공
     
     
    그에게 기회 준 곳, 부천FC
     
    그래도 그는 축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부천에 와보니 내 고향 팀이 눈에 들어왔다. 챌린저스리그를 뛰고 있는 부천FC 경기를 보러 부천종합운동장을 찾았다. 포기하는 안영진의 실력을 안타깝게 여긴 그의 주변 사람들은 해외 팀으로 나가기를 권유했지만 그는 부천에서 뛰고 싶었다.
     
    2012년 여름 이적시장. 부천은 그를 받아주었다. 그것도  그가 존경하던 곽경근 선수가 감독으로 있는 부천FC였다. 처음 곽 감독은 공격과 수비 중 어느 쪽으로 뛰고 싶냐고 물어봤다. 안영진은 포지션이 중요하지 않았다. 전반은 공격수로 후반은 수비수로 뛰어던 자신의 경력이 있었기에 어떤 자리도 괜찮다라고 말했다. 부천의 부족한 자원을 메꾸느라 안영진은 수비수로 부천유니폼을 입었다.
     
    꿈에 그리던 내 고장 팀 유니폼을 입은 안영진은 뛸 듯이 기뻤다. 포기했던 그를 다시 받아준 팀에게 고맙고 감사할 뿐이었다.
     
    그해 겨울 팀이 프로리그로 진출 된다는 소식이 술렁였다. 울산에서 클럽하우스 생활은 했지만 정식 프로선수 아닌 그가 K리그 마크를 달 수 있다는 것에 가슴이 설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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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뷔전과 함께 찾아온 부상
     
    2013년 3월, 안영진은 K리그 챌린지 프로구단 선수가 됐다. 그는 “그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행복하고 감사할 뿐이다”라고 전했다. 프로구단으로 출범한 부천FC의 동계훈련을 시작하면서 그는 프로데뷔전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리그가 시작 후 주전은 다른 동료나 신인선수들로 채워졌다. 엔트리에 들지도 못했다. 지난 4월 FA컵 예선전 전북매일과의 경기에서 교체로 나선 게 첫 출전이었다. 이후 교체선수로 조금씩 그의 이름을 올렸다.
     
    7라운드 5월 5일 어린이날 광주FC와의 경기에서 드디어 주전으로 출전했다. 하지만 전반전이 끝날 무렵 발목을 부상당했다. 이날 경기 이후로 안영진은 부상선수로 팀 훈련에도 한동안 참가 하지 못했다.
     
    웨딩촬영은 부천FC유니폼 입고
     
    안영진에게는 3천일, 9년을 같이한 연인이 있다. 울산 현대고등학교 1학년, 교실 뒤에 걸린 거울을 보며 머리를 빗던 한 소녀가 있었다. 긴 머리 쓸어내리며 하얀 얼굴의 그녀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천 마리 학을 접으며 그의 마음을 전했다. 답장은 싸늘한 반응이었다. 죽어라 쫒아 다녔다. 이제는 그녀가 지금은 누구보다 안영진의 기쁨과 슬픔을 아는 동반자이다.
     
    “지금도 그 친구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라고 말하는 안영진. 누구보다 힘든 시기를 가족처럼 같이 지켜왔기에 고마움과 미안함이 함께 한다.

    “결혼하면 부천유니폼 입고 웨딩촬영하고 싶다. 그날을 꼭 기다려 달라”고 전했다.
     
    공격수로 뛰고 싶다.
     
    7월 초에 안영진은  팀 훈련에 복귀했다. 그동안의 부상도 많이 좋아졌고 몸 상태를 끌어 올리기 위해 노력중이다. 체중도 8Kg이나 감량했다. 즐거운 팀 분위기이지만 그 안에서 치열한 경쟁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안영진은 포지션 전향을 하고 싶다. 아직 부상 중이고 팀에 보탬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내색하지 않는다.
    그의 원래 자리였던 공격수로 가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전성기였던 자리에서 뛰고 싶다. 하지만 그 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열심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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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영진 화이팅!’ 고마울 뿐
     
    안영진은 볼 보이 시절 홈 경기장을 꽉 채운 관중들의 함성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에는 관중이 정말 많았다. 부천이 다시 그때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얼마 전 홈 경기장에서 역곡중학교 축구부 생활을 같이 했던 동료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제 축구를 접었지만 부천 서포터로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부상으로 알아주는 팬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하지만 얼마 전 한 사람이 “안영진 화이팅!”하며 지나갔다. 그 말이 고맙고 기쁘기만 하다.

    부상에서 탈출한 안영진은 ‘이제 다시 시작 한다’는 마음이다. 엔트리에 들지 못해도 나를 알아주는 사람 없어도 내 고향 부천에서 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다시 축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곳이기에 이곳에서 오랫동안 뛰고 싶다”는 마음도 크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다, 그가 더욱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그를 필요로 하지 않다는 것을. 팀에게 필요한 선수, 팀 발전과 함께 나아가는 선수가 되길 원하기에 그는 남는 시간을 개인훈련으로 채운다.
     
    글 김덕영 시민기자(블로그)
    사진 김덕영 부천FC제공
     
    ▶인터뷰를 닫으며
     
    같은 팀 동료 한 선수는 안영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성이 바른 선수이다’라고. 그 평에 걸맞게 안영진은 만남부터 인터뷰가 끝난 후까지도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26살 축구선수에게 클래식 산하 유스팀, 클래식, 내셔날, 챌린저스 그리고 챌린지 리그를 경험한 과거는 무용담이 아닌 치열한 삶이었다. 안영진은 이제 그 치열함을 필드에서 보여주려고 한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만나고 싶다. K리그에서 피우지 못한 꽃망울을 봄꽃처럼 활짝 피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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