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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동 들판에 물 대는 ‘원종양수장’을 아시나요?
양경직  |  essay12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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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19  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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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동에는 다른 동네에는 없는 양수장(揚水場)이 있다. 부천 같이 큰 도시에 농사짓는데 필요한 양수장이 정말 있느냐고 할 사람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한국농어촌공사 김포지사에서 관리하는 원종양수장이 지금도 들판으로 연일 물을 퍼 올리고 있다. 

1924년 11월 부평수리조합을 완공하고 한강에서 동부간선수로(일칭, 대보둑)로 물을 퍼 올려 부천 일대의 넓은 평야지대에 벼농사를 지었다. 이후 1952년 대보둑에서 이곳까지 농수로를 내고 여기에서 다시 2단 양수로 물을 퍼 올려 지대가 높은 원종동, 고강동, 오정동 일대의 들판으로 물을 보내 논농사와 밭농사를 짓는데 이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여월동까지 이 물로 농사를 지었다.  또한 원종양수장에서 퍼 올린 물로도 농사를 짓지 못하는 지대가 높은 지역에서는 다시 양수기로 물을 퍼 올려 지금도 벼농사를 짓고 있다.

  ▲ 오정동 논에 물을 대는 풍경(현재)  
▲ 오정동 논에 물을 대는 풍경(현재)

  ▲ 기와로 지은 1952년에 건축한 원종양수장 모습  
▲ 기와로 지은 1952년에 건축한 원종양수장 모습

사진의 기와건물은 1952년 7월 18일 오정지구가 준공되면서 몽리구역(蒙利區域)이 2백32 정보(1정보=약 1만㎡)가 확장되었고, 이로써 몽리구역은 총 4천8백 정보로 넓혀질 때 지은 건물이다. 몽리구역이란 수리시설에 의하여 혜택이 미치는 지역을 말 한다. 

사진 왼쪽으로 양수장을 관리하는 관사(官舍)가 조금 보인다. 양수시설은 진공펌프로 양수(揚水) 하였는데 기사 1명, 보조기사 1명, 원종동 수리관수 3명, 오정동 수리관수 1명, 대장동은 1명이 관사에 살면서, 바쁜 농사철에는 야간에도 기사들이 번갈아 가면서 관리하였었다. 지금은 기계관수(機械灌手) 1명, 수리관수(水利灌手) 2명 중 1명은 오정동을 관리하고 1명은 대장동을 관리하고 있다.

  ▲ 10여년 전 기와 건물을 헐고 새로 조성된 양수장  
▲ 10여년 전 기와 건물을 헐고 새로 조성된 양수장

 

양경직 / 부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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